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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Aug 07. 2020

홀로 요론섬 여행

요론섬 여행기 둘째 날 (2019.10.13)

요론섬 여행 둘째 날.


8시에 일어났다. 밥맛은 없지만 깬 김에 몸을 일으켰다. 8시간을 잤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어제 무리해서 많이 걸은 탓이다. 허기를 돌게 하기 위해 세수도 하고 옷도 입으면서 나갈 준비를 하다 보니 8시 30분이 되었다. 에스티네이트 호텔은 1층이 로비 겸 식당이다. 메뉴는 일반 메뉴와 비건 메뉴가 있었다. 뭘 먹어야 힘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닭고기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에스티네이트 호텔의 조식



메뉴가 나올 동안 샐러드바에서 요거트와 한입 크기의 고야 계란찜 조각, 망고 주스를 가져왔다. 주스를 홀짝 거리고 있자니 직원이 수프, 과일, 샌드위치가 담긴 커다란 접시를 가져왔다. 곡물빵 샌드위치였는데 예상외로 겉만 바삭하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웠다. 안의 내용물도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리기 위해 간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예상보다 너무 맛이 있었다.


9시 40분쯤 체크아웃을 했다. 카운터에 짐을 맡기고 아침부터 여는 카페를 찾았다. T&M커피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멋대로 분위기를 상상했다. 중년의 오너가 뒷짐을 지고 한 손으로 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모습 같은 것. 내부는 80년대의 다방 같은 카페일 거야. 



T&M COFFEE



구글 지도를 따라 도착한 그곳은 외관부터 멋스러웠다. 지은 지 50년은 넘었을 것 같은 2층짜리 목조 주택을 개조한 가게였다. 입구에 고양이가 누워있는 모습은 마치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젊은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공간은 작지만 구석구석 신경 쓴 부분이 많이 보였다. 아아, 딱 내가 원하던 일본 느낌의 카페야! 주문을 하고 어정쩡하게 서있자니 신발을 벗고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신발을 벗어두라는 안내가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한 사람도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고 가팔랐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과 나이를 말해주는 삐걱거리는 계단 소리가 이 장소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었다. 2층에는 이미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홀로 앉아있는 사람 둘은 각각 책과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도 여행자인 걸까?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며 창가에 자리에 앉았다. 세 명의 사람이 작고 따뜻한 공간에 각각 따로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라니.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건물을 포함해 내부의 모든 소품이 나무로 이루어져 있어서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홀로 커피를 마시기에 적격인 공간이었다. 곧 사장님이 커피와 티라미수를 가져다주었다.





 감탄할 만큼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국을 떠나 비행기를 2시간 타고 온 오키나와의 한 골목에서, 목조 주택을 개조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유 없이 웃음이 났다. 바깥을 바라보아도 맞은편 건물만 눈에 들어올 뿐 별다른 건 없지만 그것마저 즐거웠다. 밖을 바라보다가 일기장을 끼적거리고 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한국이었다면 즐기지 못했을 여유를 마음껏 누렸다. 카페를 나와보니 아직도 카페 앞에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나도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아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익숙한 듯 턱을 치켜올리며 손길을 느꼈다. 우연히 만난 고양이와의 교감의 순간은 언제나 행복을 가져다준다. 





숙소에 돌아오니 11시였다. 이르긴 했지만 짐을 찾아 요론섬으로 들어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탑승수속을 하러 가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카운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빼곡했던 것이다. 서울 지하철 출근 시간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지난번 요론에 비행기를 타고 들어갔을 때 한적했던 공항과는 딴판이어서 안내원을 붙잡고 혹시 태풍 때문에 이런 거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건 아니라는 대답에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니 휴가철 나하 국내선은 꽤 붐빈다고 한다. 아니, 그래도 10월인데?!


탑승수속을 해야 하는데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한 명 한 명 체크인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인 나는 속이 탔다. 이 속도라면 난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그러지? 나는 반쯤 체념한 채 그저 앞사람만 따라갔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소리를 치며 사람 사이를 지나다녔다.


“1시 20분 하네다로 가시는 분! 이쪽으로 오세요!”


비행 출발 시간이 가까워진 사람들을 따로 불러 모아 체크인을 하는 것이었다. 이 주먹구구식 체크인은 뭐지? 혼란한 와중에 새로 카운터가 열리고 나를 그곳으로 안내해줘서 겨우 체크인을 했다. 공항에는 비행 출발 2시간 전에 도착해서 너무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1시간 가까이 줄을 섰다. 보안 검색대 앞에서 티켓에 있는 바코드를 찍은 후 씩씩하게 걸었다. 그런데 뒤에서 일본어로 손님! 손님! 하고 부르는 것이다. 난 부랴부랴 캐리어를 끌고 다시 보안 검색대로 갔다. 그곳에서 표를 주는데 그걸 받아가야 했던 거다. 그렇게 또 허둥대면서 표를 받고 게이트 앞에 대기를 했다. 



게이트로 내려가는 길 / 게이트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임산부와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 멤버십 회원, 일반 탑승객 순서로 들어오라는 방송이 나왔다. 작은 버스를 타고 비행기가 서있는 곳까지 갔다. 꼬리가 위로 솟아있고 각 날개에 앞을 바라본 방향으로 프로펠러가 달린 비행기다.





저 짧은 컨베이어 벨트로 캐리어가 들어온다.



30분의 비행을 마치고 3m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캐리어를 찾았다. 공항을 나오니 ‘요슈료칸’이라고 쓰여있는 팻말을 든 아주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공항에 꼭 데리러 와달라고 다시 한번 확인 전화를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끈한 공기지만 드디어 요론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웃음도 나고 내심 혼자라 긴장이 되기도 했다.



요슈료칸 별관



이번 여행에서 3일간 묵을 장소로 요슈료칸을 선택한 이유는 ‘주인아주머니 때문에라도 다시 여기서 묵을 거예요.’라는 한국인들의 공통된 후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친절하면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거지? 이번 여행에서 꼭 요슈료칸에 묵어보고 싶었다.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가면서 그다지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았으나 편안한 기분이었다. 도착해서는 요슈료칸 본관이 아닌 그 옆 건물로 안내를 해주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본관에는 요론섬에 일하러 온 아저씨들이 단체로 묵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별관에는 나와 아주머니만 잔다고. 나름 신경을 써준 거겠지?


"요론의 바나나예요. 한 번 먹어봐요."


아주머니가 벽 한쪽에 걸려있는 바나나를 건넸다.


"검은 부분도 껍질을 까면 괜찮아요."


손짓까지 해가며 손가락만 한 바나나와 커다란 바나나를 손에 쥐어주셨다.



요슈료칸 내부 / 아주머니께서 나눠주신 차와 요론 바나나


방이 엄청나게 컸다. 그리고 낡았다. 고등학교 때 수련회를 가서 10명씩 자던 방이 떠올랐다. 복도의 카펫이 대체 언제 깔린 건지 그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방도 마찬가지였다. 거울이 달려있는데 제대로 반사를 못하고 반투명에 가까웠다. 그 아래 달린 드라이기엔 먼지가 쌓여있다. 휴지로 드라이기를 닦으며 방을 한 바퀴 둘러보다 에어컨이 눈에 들어온다. 에어컨은 새 거다. 에어컨만이 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 에어컨을 보았을 때 살짝 감동해버렸다. 오래된 방들 중에 아마도 유일하게 교체했을 새 에어컨이 있는 방을 내어주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다른 방들도 다 새 에어컨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 새 에어컨 때문에 마음이 열렸으므로 불편하게 쪼그려 싸는 화장실도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정갈한 일본식 조식도 매일 아침 맛볼 수 있는데 무려 하루 숙박비는 4천엔. 불만을 표하기엔 너무나 저렴하다.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고 알려준 혼다 렌터카를 향해 걸었다. 온도는 높지 않지만 공기가 끈적했다. 혼다 렌터카에 들어가 스미마셍을 외쳤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계속 기다리기도 지루해서 지난번 요론에 방문했을 때 이용했던 남국 렌터카를 향해 걸었다. 남국 렌터카는 아예 문이 닫혀있었다. 무슨 일이지. 거리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사람 하나 없는 한산한 거리



아,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가 오늘 도민 체육대회가 있다고 말해준 것이 생각났다. 작은 섬이니 만큼 이런 행사는 아주 귀한 즐길거리일 것이다. 다들 가게 문을 닫고 체육대회를 즐기러 갔구나. 허탈한 마음보다는 왠지 피식 웃음이 났다. 운동회 장소가 어딘지 알면 들러보면 좋을 텐데. 지나오면서 보게 된 새로 생긴 커피숍이 있었기에 그곳에 들러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넓고 휑한 공간에 테이블에 한 개도 없었다. 바 자리에만 스툴이 놓여있었는데 오너는 아마도 테이크 아웃을 위주로 생각하고 만든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빈 공간이 너무 넓어서 의아한 마음으로 망고 요거트를 주문했다. 



망고 요거트



섬이라 그런가. 공간마저 여유롭게 사용하는구나. 한국인들은 손바닥만 한 공간도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애쓰는데. 가게를 나와서 걷다 보니 속이 더부룩한 기분이 들었다. 오션마켓에 들러 오므라이스와 카베진, 과일젤리를 사서 돌아왔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카베진을 먹고 나니 상태가 좋아졌다.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천장을 뚫을 듯한 강한 빗소리는 금방 잦아들었지만 나는 불안한 마음에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일주일 내내 비 아이콘이 붙어있었다. 화도 안 나고 일단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아까처럼 강하게 비가 온다면 내일은 아마 하루 종일 숙소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생각이 드니 갑자기 내가 가지고 있는 먹을 것이라고는 젤리와 오므라이스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서둘러 슬리퍼를 꺼내서 먹을 걸 사러 나갔다. 하지만 섬의 날씨는 예측불허. 조금 전까지 하늘이 무너지도록 오던 비는 그쳐있었다. 


편의점 마소에서 몽블랑이 사고 싶었는데 다 팔렸고 맛없어 보이는 쇼트케이크와 타르트만 남아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만쥬를 포함한 작은 빵 3개와 포키, 딸기 요거트를 샀다. 아까 들렀던 스탠드 커피에서 커피 대신 요거트를 먹었기 때문에 커피가 먹고 싶었다. 다시 방문했더니 문을 닫혀 있었다. 6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요론은 이렇게 오전, 오후, 저녁만 오픈하는 가게가 굉장히 많다. 





발길을 돌려 다시 오션마켓에 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커피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항상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게 커피인데. 


"코-히와 아리마센까?"


점원은 코-리(얼음)인지 코-히(커피)인지 헷갈려했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시늉을 하자 유제품이 놓인 진열대 앞으로 와서 살펴보았다. 진열대엔 빈자리가 많았다. 그분은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하며 커피는 캔 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풍 때문에 배가 들어오지 않아 제품을 채워 넣지 못했다고 했다. 괜찮다고 답하곤 캔에 든 라테와 아메리카노 그리고 작은 과자를 사서 나왔다. 하루 종일 집에 나가지 않을 생각으로 먹을 걸 샀더니 양 손이 무거워졌다. 숙소로 돌아와 냉장고에 음료들을 넣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오므라이스를 먹고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요론에서 군것질


저녁이 되자 꽈과광 소리를 내며 천둥 번개가 쳤다. 이번 여행의 걱정 리스트 다섯 번째에 있던 '무서워서 잠 못 자기'가 현실이 되는 건가 싶었다. 필요 이상으로 넓은 다다미방에 천둥번개에, 화장실은 복도를 걸어 나가야 하고 혼자다. 예상대로라면 나는 여기서 벌벌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티브이를 틀어놓거나 유튜브에서 고양이 영상을 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마음은 평온하기만 했다. 왜 그럴까. 어둠 속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왜 걱정과는 다르게 편안한 거지? 걱정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옆에 친구가 있다면 호들갑을 떨며 어떡해~ 천둥소리 봐! 하면서 내 마음을 전할 텐데, 말을 하지 않으면 감정도 덜 느껴지는 걸까? 답을 내리기도 전에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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