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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Jul 20. 2020

처음으로 홀로 떠난 해외여행

2019 요론섬 여행기-첫째 날 (10.12)

고향과는 다른 그리움을 품은, 삶이 지칠 때 떠올리게 되는 장소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느 곳에 있어도 민트 빛 바다와 풀 냄새나는 사탕수수 밭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 요론섬이다. 이전 직장을 다니면서 일을 관두게 되면 꼭 요론섬에서 한 달을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퇴직이 아닌 이직을 하며 그 꿈은 잠시 접어야 했다. 하지만 이직한 그 해에 억눌러놨던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일주일간 요론섬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첫 홀로 여행이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다시 요론섬에 대한 향수를 품게 되었다. 몇 년이나 요론섬을 방문하지 못하게 될까. 막막한 생각이 들면 가슴이 꽉 막히고 답지 않게 슬픈 기분이 된다. 그래서 미뤄두었던 작년의 요론섬 여행기를 기록하며 기분을 달래기로 했다.



- 인청 공항에서 오키나와 나하로


소박한 진에어의 기내식이 그립다


6~10월은 오키나와에 자주 태풍이 방문한다. 출발 전날까지 태풍이 오키나와 한가운데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출발일이 되자 태풍은 오키나와 오른쪽으로 비켜났다. 오히려 태풍 덕분에 오키나와는 예상보다 시원했다. 30도가 넘지 않는 28도의 날씨에 긴 바지를 입을 수 있다.



나하 공항에 도착하던 순간




나하 공항에 도착해 유이 레일을 타러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공항이 이전과는 달리 넓어졌다. 어라, 왜 이렇게 통로가 뻥 뚫렸지. 하고 생각해보니 국제선과 국내선을 잇는 통로 공사가 드디어 끝났다보다. 예전에는 국제선에서 국내선을 갈아타려면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이제는 실내의 통로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가는 길에 무인양품을 비롯해 기념품과 식료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어차피 시간도 넉넉했기에 여행 직전까지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잊어버린 노트를 구입하기로 했다. 캐리어를 돌돌 끌며 무인양품으로 들어섰다. 무인양품에 발을 디디면 언제나 마음이 차분해진다. 베이지톤의 단정하게 정리된 제품들과 손님에게 눈길은 주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하고 있는 점원들 덕분인 듯하다. 신기한 건 한국 무인양품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캐리어를 다리 가까이 붙여놓고 문구 코너를 살폈다.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작지만 양쪽으로 시원스레 펼쳐지는 무지 노트와 노트에 어울릴 검은 펜, 스카치테이프 심과 케이스, 작은 지퍼백을 구입했다. 스카치테이프는 살 생각이 없었지만 각진 물체를 좋아해서 구입해버렸다. 네모네모한 케이스에 동그란 스카치테이프가 들어가 있는 모양이 두고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무인양품에서 구입한 물건들

테이프 디스펜서 : 120엔

투명 테이프 : 90엔

지퍼백 : 80엔

볼펜 : 90엔

노트 : 150엔


무인양품에서 좋아하는 것 하나가 더 있는데 가죽으로 된 머니 트레이다. 다른 일본 가게에도 물론 머니 트레이는 자주 볼 수 있지만 무인양품의 가죽 재질로 된 머니 트레이는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부분이 있다. 동전을 올려둘 때 스테인리스처럼 쨍그랑하는 소리도 없고 차분하게 동전이 내려앉는 그 느낌이 좋다. 그 위에 동전을 올려두며 이번 여행에서의 첫 소비를 시작했다. 모든 무인양품이 가죽 머니 트레이를 쓰는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츠지리 나하 공항점


통로를 따라 느긋하게 걷다 보니 맛챠 전문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띄었다. 초록색은 일반적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색은 아니지만 맛챠만은 다르다. 빙글빙글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마지막에는 날렵하게 솟아있는 모형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이전의 경험했던 맛챠 아이스크림의 맛을 연상시킨다. 캐리어를 쥔 채로 그 앞에서 지나가지 못하고 모형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니 점원 분이 무어라 말을 건다.



이걸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치나요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 종종 나무로 만들어진 잔 안에 또다시 유리잔을 넣고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나무잔을 ‘마쓰잔’이라고 하는데 나무향이 배어들어 술맛이 더욱 다채로워진다고 한다. 근데 그 마쓰잔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얹어 판매하는 메뉴가 있었다. 수상한 메뉴지만 여행지에서는 모험과 사치가 미덕이다. 호기롭게 주문하고 받아 들었다. 그런데 마쓰잔 안에 그것과 딱 들어맞는 플라스틱 그릇을 얹고 그 위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얹어져 있는 게 아닌가! 마쓰잔의 원래 의미(나무향을 느끼게 하는)도 없거니와 플라스틱 쓰레기까지 추가로 발생했다. 하하하하. 잠시 멈칫했지만 그릇을 가져가려면 씻어야 되는데 씻을 장소가 마땅치 않을 손님을 위해 이렇게 배려를 했거니 하며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 거 보니 그저 그랬나 보다.


마쓰잔에 들어간 말차 아이스크림 + 플라스틱

말차 아이스크림 : 734엔

문어 센베 : 550엔


설렁설렁 가게들을 기웃거리다 보니 오후 2시였다. 3시 체크인이었기에 발걸음이 더욱 더뎠다. 유이 레일로 넘어가는 통로에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카카오 보이스톡으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잘 도착했어?

-응. 그럼.

-좋아?

-좋지. 나중에 같이 오자.

-응응.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유이 레일을 탈 수 있는 통로가 보인다


담백한 통화였지만 첫 홀로 여행으로 내내 긴장을 했던 나를 위해 전화를 했다는 걸 알았다. 통로를 건너는 발걸음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역으로 들어가 미에바시 역까지 가는 표를 구입했다. 그런데 시스템에 있어서 보수의 끝을 달리는 일본도 아주 조금은 디지털스러워져 있었다. 바로 표를 개찰구에 넣는 대신 바코드로 찍도록 바뀌어 있었던 거다. 이제 막 변경이 된 건지 역무원들이 개찰구 양옆으로 서서 사람들에게 바코트를 찍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내릴 때까지 잘 챙기고 있어야 하는 유이레일 티켓

유이 레일 티켓 : 300엔


유이 레일에 올라 창밖으로 나하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커다란 강 주변에서는 작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고,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물도 보인다. 대도시는 아니라서 아기자기한 4-5층 건물이 즐비하다. 서울의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던 나는 이곳에서 푸근함을 느낀다.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된다. 기분 탓이겠지만 햇볕이 조금 더 밝고 또 포근하게 느껴진다.


공항 근처는 이런 분위기



목적지인 미에바시 역에 도착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2시 30분. 체크인이 3시라서 지금 가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잠시 역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유이 레일이 오가는 것을 4~5분쯤 지켜보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일어섰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5분도 참 길게 느껴진다.


칭아나고 포장을 한 유이 레일



요론섬은 나하에 1박을 꼭 해야 한다. 요론에 가는 배나 비행기가 하루에 한 편씩만 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하에서 묵을 숙소는 에스티네이트 호텔이었다. 도착했을 때는 2시 40분으로 20분 먼저 도착했지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선뜻 체크인을 해주었다. 열쇠는 쓸데없이 묵직하고 고급스러웠다. 심지어 분실하면 5000엔을 변상해야 했다. 브랜딩도 좋은데 일단 용도에 맞게 가볍게 제작하는 건 어땠을까.


-숙소 이야기

에스티네이트 호텔은 기존 저가 호텔들보다는 확실히 내부는 넉넉했다. 하지만 창문 바로 앞은 옆 건물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화장실은 간이로 만든 듯한 강화 플라스틱 재질의 욕실이었다. 숙소에 묵으면 꼭 반신욕을 하기에 많이 실망했다. 또 다른 단점은 침대 근처에 콘센트가 없었다는 것! 드라이기를 사용할 때도 콘센트 근처에 거울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그래도 테이블이 있어서 일기 쓰기엔 좋았다

숙소 1박 : 10,972엔 (조식 포함)


공항에서 홍삼 한포를 들이켰는데도 호텔에 도착한 것만으로 지쳤다. 하지만 오키나와에! 나하에! 왔는데 이대로 쉴 수는 없었다. 나가기 전 출출한 속을 한국 공항에서 산 떡으로 달랬다. 먹을 게 들어가니 조금은 기운이 생겼다. 가방 안에 카메라, 보조배터리, 지갑, 노트, 와이파이 장치를 챙기고 나섰다. 가방이 묵직했다. 가뿐한 여행을 하려면 전자기기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구나. 지난번 요론섬에서 종이 지도 하나 들고 여행했던 것과는 대비대는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하려니 불안함이 짙어지고 그 불안은 곧 물건들로 채우려 했다. 길을 잃으면 어쩌지, 돈을 도둑맞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


나하에는 이렇게 길가에 뜬금없이 물이 있고 그 안에 금붕어가 있다. 어떻게 관리하는 거지????


전자기기가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중고 서점 '우라라'로 향했다. 우라라는 나하의 시장 안에 있는 작은 중고 서점으로 도쿄의 서점에서 일하던 우다 도모코씨가 오키나와로 들어와 차린 서점이다.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라는 우다 도모코씨가 책방을 열게 된 이야기를 담은 책은 한국어판도 판매되고 있다. 우라라 서점에서도 이 책을 파는데 한국에서 보다 가격이 비쌌다. 나는 작은 그림일기 책을 샀다. 작가가 매일 하나의 그림과 하나의 문장을 써놓은 귀여운 책이었다.


우라라 서점

그림일기 책 : 1430엔


사쿠라자카 극장에 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사쿠라자카 극장의 상영 시간표를 먼저 확인했었다. 상영 영화 중 아폴로 11호에 대한 영화를 보고 싶었으나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전에 느꼈던 지방 영화관의 아담하고 담백한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방문했다. 영화 상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손수 티켓을 끊고 그 위에 도장까지 찍어주는 모습이 정겹다.


나하에 가면 이 극장에서 영화 한 편 어떠세요?


나무로 만들어진 청소솔이나 키친웨어, 개인이 만든 액세서리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한 바퀴를 둘러보고 나오자 맞은편에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가지 소품도 판매하고 있다



작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공원으로 가는 계단에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내 옆에 다가왔지만 손을 대면 한 발짝 멀어졌다. 밥을 기대했으나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금방 꼬리를 보이며 멀어졌다.


밥을 내놓지 않으니 표정이 좋지 않다


언덕 꼭대기에는 또 다른 고양이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새하얀 배를 가진 치즈 고양이였다.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길래 쓰다듬었더니 이내 더 가까이 다가오며 냥냥 소리를 냈다. 궁디 팡팡을 해주니 너무 좋다고 마구 울었다. 손을 멈추면 머리를 부비고 한 바퀴 돌아 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쪼그려 앉아있기가 힘들어 벤치에 앉았더니 그 옆에 올라와서도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20분을 궁디 팡팡했다.


더 열심히 팡팡해라!


사구라자카 극장 맞은편의 키보가오카 공원
공원에서 내려다본 사쿠라자카 극장


꼭 가야겠다고 찜해두었던 식당 아에로이에 가려고 일부러 먼길을 걸었건만. 당분간 저녁 장사는 안 한다는 작은 종이만 문 앞에 붙어있었다. 허탈했다. 커피 한잔 하며 일기를 쓰고 싶었는데 지난번 저녁에 방문했던 타소가레 커피도 이젠 저녁 장사를 안 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돈 욕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저녁엔 다른 일을 하는 걸까?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뀐 바람에 나의 계획까지 틀어져 저녁을 다른 곳에서 먹어야 했다. 플랜 B는 구글 평점이 높은 스테이크 가게였다. 그곳에 20분을 걸어서 도착했는데 자리가 없다는 답을 받았다. 뻔히 자리가 보이는구만.. 내가 안을 힐끗거리자 주방에 들어가 상의하더니 1시간 동안 먹을 수 있으면 괜찮다고 말을 바꿨다. 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난 원래 먹는 속도가 엄청 빠르니까.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일본식 거절 멘트였던 거 같기도 하다. 이 사람들은 돌려 말하기 천재잖아. 왜 그게 이제야 생각났지? 하여간 구글 후기를 보니 굉장히 맛있지만 대신 가격이 꽤 나간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150g에 4800엔 정도였다. 눈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뭐 오키나와에서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는 후기도 있었기에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두둥! 그냥 저렴이 고기랑 별 차이가 없었다.. 대실망.. 거기다 같이 나오는 빵의 퀄리티도 실망.. 오렌지 주스는 당연히 생과일이 아니다.


그 와중에 사진은 찍었음

스테이크 + 오렌지 주스 : 5555엔


허탈한 맘으로 얼른 자리를 비워주고 류보백화점으로 향했다. 요론에 가서 인형을 주인공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맘에 드는 인형이 한 개도 없었다. 죄다 유명한 캐릭터의 인형만 판매되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오다 기내식으로 받은 머핀과 먹으려고 편의점에서 블랙커피를 샀다.


나하에 오면 한 번쯤은 꼭 방문하게 되는 류보 백화점

 

호텔에 돌아와서 입욕제를 풀고 몸을 담갔다. 내일은 요론에 간다. 요론 배는 결항이란다. 다행히 난 비행기를 예매했다. 근데 신기하지. 내가 요론에 갈 때마다 태풍이 온다.


1일 3 커피 준수

편의점 블랙커피 : 100엔


첫 홀로 해외여행의 첫날 소회는 걱정했던 것보다 직접 해보면 별 게 아니라는 거. 걱정 안에서만 큰일은 벌어진다. 그리고 내가 뭘 원하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그다지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긴 첫날부터 그러면 안 되지.


숙소 포함 총 19,871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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