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젓가락을 찾아서
오카야마 4박 5일 여행 중 둘째 날. 조식을 먹은 후 어젯밤 회사에서 요청이 온 급한 일거리를 호텔 로비에 있는 컴퓨터로 해결해야 했다. 키보드 설정을 한글로 바꾸는 데에만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뿐이 아니다. 구글이 일본어 버전이기에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일을 마쳤다. 밖에 나선 시간은 오전 11시. 점심을 먹기에도, 후식을 먹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근처 상점가나 돌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발을 옮겼다. 수저나 찻잔을 비롯한 온갖 그릇들과 주방 용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상점가 초입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 젓가락질이 잘 되는 젓가락을 사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완벽한 젓가락이란 젓가락을 마주 잡았을 때 젓가락 꼭대기부터 끝까지 빈틈이 없어야 한다. 재질 또한 너무 매끄러워 음식물이 흘러내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집에 굴러다니는 스테인리스로 된 원형의 젓가락은 최악이다. 젓가락 끝이 제대로 물리지 않아 작은 음식은 잘 집어 지지 않는다. 거기다 스테인리스가 표면이 미끄러워 라면 같은 면요리를 먹을 땐 면이 떨어져 온 사방에 튀게 만든다. 대체 이런 젓가락은 왜 만드는 건지 알 수 없다. 이런 불편한 젓가락은 분식집을 비롯한 온 사방에 퍼져있는데 그 발원지는 알 수 없다. 나도 어쩌다가 이 젓가락을 가지게 됐는지 모르겠다. 스테인리스라 부서지지도 녹슬지도 않아 내가 다른 젓가락을 사지 않는다면 아마 이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한 젓가락과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에서 꼭 젓가락을 사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으레 시장의 가게들이 그렇듯 입구 쪽에는 세일 제품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 젓가락은 둘째 줄과 셋째 줄에 나란히 걸려있었다. 젓가락을 종류별로 빼내어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마음에 드는 완벽한 젓가락을 찾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팔각형으로 각이진 멋스러운 나무젓가락이었다. 게다가 다섯 개가 한 세트로 각각 다른 나무로 만들었는지 색이 달랐다. 이렇게 멋진 젓가락 세트가 단돈 748엔밖에 하지 않았다. 한 개도 아니고 무려 5개인데!! 이렇게 금방 완벽한 젓가락을 만나다니! 이후에 어딜 가도 젓가락을 팔기에 관찰을 해보았지엔 이때 산 것이 제일이었다.
성공적인 쇼핑 후 기분이 좋은 상태로 근처의 작은 절, 칸류지(観龍寺)에 올랐다. 일본의 특색 중 하나가 어디에나 있는 신사나 절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산속 깊은 곳에 절이 있기 마련인데 일본은 마을이나 도시의 길을 걷다 보면 있을 것 같지 않은 위치에 뜬금없이 절이나 신사가 위치한 경우가 왕왕 있다. 오르막을 걸어 오르는 길에 마을을 내려다보니 참 소담하다. 욕심을 부리지 않은 필요한 만큼의 면적과 필요한 만큼의 공간을 가진 집들이다. 듬성듬성 집들 사이에 자리한 자전거 주차장이 사랑스럽다.
칸류지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느긋하게 마당을 거닐며 소나무와 위로 독특하게 말려 올라간 처마를 감상했다. 입구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일본인 관광객 두 명이 다가와 아치 신사의 위치를 물었다. 난 한국사람이라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런데 길을 찾으려 구글맵을 켜보니 바로 옆에 아치 신사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한 그분들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며 방향을 알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후 길이 갈라지는 곳까지 함께 걸어갔다. 친구는 한국 사람이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길을 알려주는 게 재밌다며 옆에서 사진을 연신 찍었다.
점심은 구라시키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 돈카츠 갓파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줄을 길게 서는 걸로 유명했다. 그래도 비수기라 사람이 많지 않겠거니 했지만 12시 반쯤 도착해서인지 벌써 여러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옆 가게의 빈 공간을 손님들의 대기석으로 쓰고 있을 정도였다. 대기 리스트에 이름과 사람 명수, 원하는 자리를 체크하고 가게 앞 의자에 앉았다. 자리가 나면 종업원분께서 나와 명단을 확인하고 이름을 불러주셨다. 20여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의 순서였다. 워낙 손님이 많다 보니 모두 합석을 하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는 중년의 양복차림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메뉴를 보다가 역시 대표 메뉴를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돈가스 작은 사이즈에 카라시(겨자)를 추가했다. 옹기종기 앉아 돈가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마치 나도 이곳의 주민이 된 기분이었다. 이윽고 연갈색의 통통한 돈가스가 내 앞에 놓였다. 데미글라스 소스를 둘렀음에도 튀김옷이 굉장히 바삭했다. 데미글라스는 신맛은 전혀 없는 달달하고 은근한 감칠맛이 있었다. 겨자와 함께 먹으니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줄 서서 먹을 정도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맛이었다.
식사 후엔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보니 구라시키 이야기관(倉敷物語館)을 발견했다. 옛날식 건물들이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둘러싸고 있으며 구석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무료로 둘러볼 수 있었고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작은 전시공간도 있었다. 전시 공간 안에는 구라시키 마을을 작게 재현해놨는데 아치 신사가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이 신사는 모모타로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어느 골목에 들어가도 어느 곳이나 예뻤다. 동네 자체가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된 터라 특유의 운치가 있었다. 중심에는 자그마한 강이 흐르는데 비단잉어와 백조가 살고 있다. 따뜻할 때에는 강에서 나룻배도 탈 수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인력거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옆을 기모노 입은 관광객이 지나갈 때면 그 부근만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