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마을의 작은 골목을 자전거로 달리다
1월. 여행을 떠나기엔 애매한 달이다. 춥기도 하고 새해의 첫 달이기에 할 일도 많으니까. 이런 여행하기 애매한 달에 일본 오카야마에 갔다.
오카야마를 선택한 이유는 소도시이며 공항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소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적하고 사람이 적어서이다. 사람이 많은 오사카나 도쿄는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갈 생각이 없다. 오카야마는 대한항공만 운행하고 있다. 출발 시간은 아침 8시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때문에 4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다.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타다를 불러서 리무진 버스 정류장까지 가야 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졸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상 신기한 건 식사를 줄 때는 눈이 떠진다는 거다. 샌드위치였다. 한입 먹고 연어 샌드위치인 걸 알아서 연어를 싫어하는 나는 연어를 빼고 빵만 오물거렸다.
오카야마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와아- 아직 아침이다! 다른 때엔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짐 풀고 숙소에서 누워있다가 저녁을 먹고는 했는데, 그랬던 걸 생각하면 하루를 번 것 같았다. 아담한 오카야마 공항의 출구로 나오면 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건물 쪽에는 티켓 판매기가 있다. 그 옆에는 도움을 주는 직원이 있는데 알아서 티켓을 뽑아주신다. 목적지만 잘 말하면 되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숙소는 구라시키지만 구라시키까지 가는 버스는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기에 오카야마행 차를 탔다. 이날은 오카야마 여행을 할 셈이었다. 버스는 30분 정도 달려 오카야마 역 서쪽 출구에 도착했다. 여행이 끝나는 날 이곳에서 다시 공항행 버스를 타야 하기에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풍경을 익혔다. 곧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 네코노테(고양이 손)를 찾았다. 그곳에서 짐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위치를 물었다. 에스컬레이터와는 반대방향으로 신칸센을 타는 곳 옆의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네코노테에서는 짐을 맡아주기도 하고, 제휴된 숙소에 직접 짐을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한다. 하지만 내가 예약한 숙소는 해당이 되지 않았기에 맡기는 서비스만 이용하기로 했다.
여행을 할 때면 매번 자전거로 이동을 한다. 하지만 구글에서 오카야마 자전거 렌털로 검색했을 땐 공공자전거 서비스만 나올 뿐 사설 자전거 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가 자전거 렌털숍을 발견했다. 서쪽 출구 바로 옆쪽에 렌털 샵이 있었던 것이다! 1일 500엔. 보증금이 5000엔이었다. 보증금이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여권을 꺼냈다가 주민등록증까지 꺼내보였다가 가게 주인이 손사래를 치는 걸 보고 다시 집어넣었다.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돈을 주고서 돈을 줬다는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나는 레시또(영수증)이라는 말 밖에 모르기 때문에 레시또를 달라고 했고, 가게 주인은 내가 돈을 맡겼다는 증서를 써서 주셨다.
자전거를 빌리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팠다. 첫끼다보니 일본스러운 걸 먹고 싶었다. 일본스러운 것이라.. 구글맵에 별표 해두었던 곳 중 코엔벤치라는 카페를 찾았다. 음식도 맛있을 것 같았고 분위기도 좋아 보였다. 자전거에 핸드폰 거치대를 장착하고 네비를 켠 채 달리니 이렇게 편할 수 없다. 외국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자전거용 핸드폰 거치대가 필수다. 근데 길이 이상했다. 자꾸만 주택가 사이로, 그것도 자전거로 갈 수 없는 좁은 골목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한 명 다니면 꽉 찰 정도의 골목으로 들어섰다가 중간에 나타난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길을 빠져나갔다.
가게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이곳에 정말 카페가 있는 걸까? 하지만 구글 지도는 정확했다. 별표가 찍힌 곳에 문 앞엔 작은 런치메뉴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그냥 지나쳤다면 아마도 이곳이 카페인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일본에는 이렇게 가게인지 집인지 모를 곳이 많다. 겉모습에 조금 주춤했지만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미닫이 문을 열자 커피콩 볶는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났다. 밥을 먹으러 왔는지 커피를 마시러 왔는지 묻기에 밥이라고 했더니 안으로 들어가란다. 안은 다다미방이라서 신발을 벗고 올라섰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모습이었다. 아기자기한 미니 정원은 '귀여워!'라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오게 했다. 유심히 밖을 바라보다 보니 고양이의 궁둥이를 발견했다. 한번 더 '으악 귀여워!'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런치메뉴는 세 가지. 돼지, 닭고기. 그리고 두 개가 섞인 것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갔기 때문에 치킨 하나. 돼지 하나를 시켰다. 음식이 나올 동안 실내를 더 자세히 둘러보았다. 코타츠가 있는 책상이라거나 1인 손님을 위해 마련된 좌석도 있었다. 그리고 작고 작은 온풍기까지. 배려가 스민 디테일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항상 작은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일본의 작은 소품들이나 작은 손길이 닿은 공간을 보면 사랑스러워서 어쩌지 못할 감정에 빠지게 된다. 이 공간이 내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하염없이 창밖으로 흔들리는 식물들을 보고 있자니 식사가 나왔다. 커피와 세트로 했지만 밥이 먼저 나왔다. 향이 진한데 카레라기보다 국물요리라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아는 카레와는 좀 달랐다. 밥을 모두 먹고 나니 곧바로 커피를 가져다주셨다. 커피는 진한 향이 풍겨 드립 커피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일본은 드립 커피든 아니든 무조건 프림과 설탕을 같이 준다. 그냥 마시는 버릇을 하던 사람도 한 번 넣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 역시 중간까지는 그대로 마시고 설탕과 프림을 넣어 달달하게 마무리했다.
배도 채웠으니 고라쿠엔에 가볼까? 입장료는 410엔. 오카야마성과 같이 볼 수 있는 티켓도 있는데 문화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우리는 고라쿠엔만 둘러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입구 근처에 세우고 들어갔다. 서양인 직원이 웰컴 하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정원이다. 깨끗하고 단정하다. 산책을 하다가 독특하게 깎인 지붕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까 입구에서 인사를 하던 서양인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친구가 영어를 할 수 있어서 둘이 대화를 시작했다. 그 직원은 자기가 고라쿠엔 페이스북 관리자인데 매주 고라쿠엔을 방문한 외국인을 찍어서 올린다고 했다. 이번엔 우리 둘을 찍고 싶다는 말이었다. 뭐 안될 거 있나. 알겠다고 답하고 그 특이한 지붕 아래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 이분 심상치 않다. 여러 가지 포즈까지 지정해주시면서 코치를 해주신다. 아이폰 에어드롭으로 사진을 받았는데 퀄리티도 상당했다. 뒷얘기를 들어보니 이탈리아 사람이고 부인이 일본 사람이라 여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커다란 인공호수를 끼고돌고 있는데 돌연 비바람이 쳤다. 일기예보에는 없던 비라 우산도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호수 중앙에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찻집 오너를 보고 있었는데 그분과 눈을 마주쳐 버려서 겸사겸사 그 찻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그분은 태극권을 할 때 입을 것 같은 도복 모양이지만 재질은 최고급 실크인 듯 보이는 페르시안 블루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찻집도 단 한 칸으로 한 번에 한 팀밖에 들어오지 못했다. 건물 자체가 그렇게 작았다.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원하는 다기를 고르라고 하신다. 하나씩 찻잔을 고르자 그 다기에 마차를 만들어서 가져다주셨다. 차와 함께 키비 당고(수수 당고)를 내어주셨다. 고라쿠엔의 사진집도 함께 건네주셨는데 사진을 보고 있는 와중에 비바람 때문에 한지를 바른 나무문이 덜컹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날이 좋았을 때 왔으면 문을 열어두고 밖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차를 마셨겠지.. 아쉬움이 남았다. 돌아갈 때 쯔음 작은 개구리모양 도자기 인형을 주셨는데 지갑에 넣고 다니면 돈이 돌아온다고 한다. 개구리(카에루)와 돌아오다(카에루)가 같은 발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어이없는 미신이 좀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제 오카야마 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가서 자전거도 반납하고 짐도 찾아서 구라시키 역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가는 길도 수월하진 않았다. 구글 지도를 걷는 기준으로 해놓아서 역사 안으로 들어가 뚫고 지나가는 길을 안내해준 것이다. 역까지 도착했는데 자전거로 건널 수 없다는 걸 알고 좌절했다. 횡단보도를 찾아서 멀리 다시 돌아가야 했다. 자전거를 반납할 쯔음엔 종아리가 터질 것 같았다. 겨우 자전거를 반납하고 짐도 찾았다. 이제 숙소로 가자!
구라시키 역에 도착하면 역이 2층에 있기 때문에 내려가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옆에 있는 백화점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그렇게 꼼수를 써서 얼마 걷지 않았더니 곧 숙소가 나왔다. "요야꾸시딴데스께도.." 하지만 대답은 "한국 분이세요?"였다. 너무 좋다. 프런트에 계시던 두 분이 모두 한국사람이었다. 이곳은 2박에 2인 트윈베드 거기다 조식까지 포함했는데 말도 안 되는 금액 22000엔으로 예약한 곳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한국인 직원들의 친절한 응대까지. 대욕탕이 라돈탕인 것만 빼고 완벽한 숙소였다. 4시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몸을 혹사시켰기에 그대로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1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저녁을 먹기 위해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호텔 직원이 추천 맛집 지도를 주셨지만 알아보기가 어려워 구글맵에서 이자카야를 검색했다. 이자카야는 잘못 선택하면 굉장히 비싼 곳일 수 있기 때문에 가격대를 잘 보고 가야 한다. 구라시키 상점가에 위치한 9494라는 식당을 발견했는데 입구에 나와있는 메뉴판이 도움이 되었다.
들어가서는 영어 메뉴판을 보고 먹고 싶은 것을 마구 주문했다. 일본에 오면 항상 먹는 카시스 오렌지와 기본 안주인 타코 와사비! 비린 것만 먹어왔는데 여기서는 왜 이리 맛있는 거지? 이걸로만 술 한잔은 전부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다음에 나온 메뉴는 오징어 다리 튀김이다. 짭조름한 반건조 느낌의 튀김인데 마요네즈와 정말 잘 어울린다. 하지만 전혀 질기지 않고 씹는 감촉도 부드러워서 순식간에 한 접시를 비워버렸다. 이어서 나온 메뉴는 이 가게의 대표 메뉴인 감자 크로켓이다. 안에는 피자치즈가 들어가서 죽 늘어나는데 겉은 녹말가루를 묻힌 건지 튀김보다는 구이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 나온 두부튀김 요리. 양념이 정말 말도 못 하게 맛있었다. 칠리와 케첩 맛을 섞은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고급스럽다. 두부도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튀김옷의 식감이 절묘했다. 볶음면은 계란의 역할이 컸다. 담백하면서도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맛이다. 주문한 메뉴 중 맛이 없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오카야마의 첫 날은 맛있는 음식과 함께 충만하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