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더미에 별점 오점을

이시가키 게스트 하우스-하리하리 하우스

by 박강하

하리하리 하우스에는 오렌지 빛이 감도는 조명들 덕분에 따끈한 느낌을 주는 공용 거실이 있다. 식탁 구석에 앉아 맞은편 벽에 붙어있는 텔레비젼 화면을 보았다. 한참 트럼프 얼굴이 나오다가 문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경례를 하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친구가 핸드폰으로 찍으며 "와 멋있다."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 나라의 소식을 본다는 것은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다. 고개를 숙이면 익기를 기다리는 컵라면이 보인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일년만의 여행이니 오랜만에 마셔볼까. 여긴 생맥주를 셀프로 먹을 수 있는 숙소다. 그냥 생맥주도 아니다. 오키나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오리온 맥주다. 편하게 쓰도록 여러 사이즈의 접시들을 뒤집어 정리를 해둔 선반 옆에는 500짜리 맥주컵이 있다. 정수기 옆에도 테이크아웃용 기다란 플라스틱 컵이 있다. 하지만 좁은 선반에 놓인 작은 유리잔에 맥주를 담아냈다. 친구는 문이 투명한 냉장고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과일맛 술을 하나 꺼냈다. 일단 먹고 나중에 체크아웃할 때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냉장고 옆에 붙어있는 화이트 보드에 매직으로 이름과 먹은 술 이름을 써두었다. 그 사이 컵라면이 익어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IMG_1574.JPG 숙소 안의 생맥주 기계




"와, 나 지금 진짜 좋아."


옆에서 친구도 히히 웃었다. 웃기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왜 이 먼곳에서 개고생을 하고 있나 생각했는데. 섬 언저리에 위치한 숙소 근처엔 식당이 단 두 곳 뿐이다. 비바람을 뚫고 찾아갔지만 한 군데는 이제 장사를 안 한다고 하고, 그 옆집은 저녁장사를 안한댄다. 되돌아 걸어서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는 리조트로 찾아갔다. 리조트에는 식당이 있지만 6시부터 오픈이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이었다. 숙소에서 4시 10분에 나왔으니 40분을 밖에서 비를 맞고 돌아다닌 거다. 배가 너무 고파서 매점에서 맛있어 보이는 것을 이것저것 쓸어담았다. 로비에 앉아 센베 봉지를 북 뜯었다. 한 개를 급하게 집어먹고 말했다.


"다른 거 뜯어봐."


이번엔 말린 문어다.


"윽. 짜! 물 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고구마 스틱 봉지를 뜯어 맛을 봤다. 이건 맛없기가 힘든 건데. 이제 막 다른 과자 봉지를 뜯어 맛을 보던 친구의 표정도 좋지 않다. 어쩜 이리 전부 맛없을 수가 있나. 이렇게 배고픈 상황에서? 뜯었던 봉지들을 까만 비닐에 쑤셔넣고 방을 안내받아 숙소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 보았다. 나도 돈이 많았으면 리조트에서 편하게 잤으려나. 짐도 들어다 주고 직원들 참 친절하다. 할 일이 없어서 핸드폰만 들여다 봤다. 정확히 여섯시부터 사람들이 식당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오픈 시간을 기다렸나보다. 이제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웃는 얼굴로 입구에 들어섰으나 예약한 손님만 들어갈 수 있다는 벼락같은 말이 떨어졌다. 아. 아아아. 친구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컵라면이나 사가자."


다시 매점으로 들어가 컵라면을 하나씩 골랐다.


"매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없었으면 우리 진짜 굶어죽었을지도 몰라."


"근데 여기가 예약 다 찼으면 다른 손님들은 밥 못 먹는 거야?"


"다른 손님들은.. 차가 있어."


"그러네? 다 우리 같은 줄 알았네."




IMG_1560.JPG 진짜, 진짜 맛있다




그렇게 리조트 매점에서 사온 컵라면이다. 근데 너무 맛있어. 진국이야. 라면 한입 맥주 한입 마시고 진짜 맛있다를 연발했다. 난생 처음으로 컵라면 국물까지 다 마시고 무료로 내려먹을 수 있는 커피를 잔에 따랐다. 아까 사온 과자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지만 몇개 집어먹지 않고 도로 까만봉지 행이다. 대신 작은 나무 볼 안의 여러가지 과자들 중 하나를 골랐다. 그 볼을 들고와서 친구에게 보여줬다.


"손님들 먹으라고 이렇게 과자도 준비해둔 것봐."


꽤나 볼륨있는 과자 구성에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건 세심하게 신경쓰지 않으면 잘 챙겨지지 않는 부분이다. 보통은 생색내기용으로 사탕이나 들어있는 게 대부분이니까.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 생맥주도 그래. 내가 열번 먹고 한잔만 마셨다고 하면 어떡해. 그런데 그냥 알아서 적는 거잖아. CCTV도 없는데."


"그러게. 손님을 믿지 않으면 이렇게 못하는데. 완전 신뢰 사회다."


"이게 신뢰 경제네."


"아까 방 봤어? 이불 세개나 있어."


"와, 배려 좀 봐. 세개 다 덮으면 전부 빨아야되잖나."


"그러니까. 화장실에도 새수건 쌓아둔거 보여주고 편히 쓰라고 했잖아. 막쓰면 어쩌려고."


집에서는 수건 막쓰지 말라고 구박이나 받았었는데. 마음이 말랑해진다. 비바람 속에서 왜 하필 여기에 숙소를 잡은 건지 후회했던 마음이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좋았어. 어딘가에 평가를 남긴다면 별 5개 만점이다.


"민똥 이런거 해." (민똥-친구가 날 부르는 애칭)


"뭐."


"이런 게스트 하우스."


좋은 장소에만 가면 우리는 서로 이런 말을 한다. 너도 이런거 해라. 일종의 덕담같은 거다.


"언젠간 하자. 여기 맞은편에 작은 미술관있자나. 나 게스트하우스 하면 넌 미술관하면 되겠다. 미술관겸 작업실."


"좋네. 좋아. 아, 기분좋다. 오랜만에 술 마셨더니."


"이런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기분 좋은 일이야. 하나하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공간."


"응. 컨셉도 있어. 여기 강아지가 마스코트인가봐. 화장실에도 시바견 화장지 커버 있고, 저기 유리문에도 스티커 붙어있고."




IMG_2063.JPG 하리하리 하우스 입구




어슬렁거리며 거실을 살피다 보니 구석에 하리하리 하우스 엽서까지 있다. 귀여운 엽서를 보며 감탄하고 있노라니 이집에 사는 타마가 몰래 빠져 나온 것이 보였다. 고개를 숙여 "안녕" 했지만 사람이 싫은지 더 구석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인분이 따라나와 타마를 부르다 내가 들고 있는 엽서를 본 모양이다.


"친구가 디자이너인데 여기 로고랑 엽서를 만들어줬어요. 여기 걸려있는 이 그림은 선배가 준거고, 이 식탁은 이 근처에 공방에서 사온 거고."


주위에 예술가가 잔뜩 있는 건가. 말씀하실 때마다 둘의 입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너무 멋져요. 너무 예뻐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예쁘고, 멋졌다. 이 공간을 아끼는 마음이 듬뿍 느껴졌다. 방으로 돌아온 후에 만약 내가 이런 곳을 꾸린다면 하고 상상해본다. 콘센트는 어디에 위치하고, 컵은 몇개나 준비해 놓을지까지 생각하다 귀찮아서 관둬버렸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말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뭘하면 나도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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