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가키 커피숍 Waizu(和居津)
일본에는 유독 요리가 메인인 드라마나 영화가 많다. 그중에도 힐링 물이라 불리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으로만 가득 찬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취향 때문에 일본의 작은 마을만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소는 카페 혹은 빵집, 수프 가게 일수도 있다. 그저 하루하루 작은 일들을 풀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꼭 생각한다. 나도 저런 가게 해보고 싶다. 매일매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과 짧지만 진심이 담긴 마음을 나누고, 소소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그렇지만 알고 있지.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는 걸.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찾았다. 그곳을.
구글맵이 아니었다면 절대 절대로 찾지 못했을 카페였다. 코앞까지 와서도 이곳이 진짜 카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간판 하나 없는 건 너무 했다. 가정집이 빼곡한 작은 골목 사이에서 빛이 바래 흐릿한 A4 사이즈만 한 안내판이 벽에 붙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입구가 비어있다면 다행이지만 차가 있으면 길을 막아버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다. 여기가 두 번째 관문이다. 용기를 내어 차 사이를 조심스레 비집고 들어가면 세 번째 단계다. 항상 간판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이곳이 가게인지 아니면 수상한 장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일본식 발이 길게 늘어져있다. 물론 안쪽은 보이지 않는다.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훅 끼치는 아로마 향을 맡을 수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 선율 말고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것에 놀랄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고 안쪽을 살피지만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신발을 벗고 마지막 용기를 내야 한다. 안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들어서면 코 속 깊이 스며드는 커피 향에 입가가 절로 치켜 올라간다.
정사각형 좌식 테이블이 넷. 혼자 온 여자 손님과 여자와 남자 한 명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리번거리다 여자와 남자가 앉은 옆 자리에 앉았다. 주인 분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우린 저도 모르게 속삭이며 대화했다.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뒤편에서 나타났다. 다가가 말했다. 메뉴 쿠다사이. 내 일본어의 한계
할아버지는 웃으며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나는 이미 이곳의 사이트까지 들어가서 메뉴를 알고 있었다. 전부 드립 커피라는 것과 다쿠아즈도 판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열심히 메뉴를 들고 친구에게 설명해주었다. 친구는 브랜드 커피 나는 모카, 그리고 남은 디저트는 치즈케이크뿐이라고 해서 치즈 케이크를 주문했다. 오너상은 어떻게 여길 찾아왔냐며 물었다. 나는 구글맵에서 봤다고 대답했다. 역시 오너상도 여기 오는 손님이 어떻게 찾아오는 건지 궁금하구나.
오너상은 뒤쪽 바 테이블에서 필터에 원두가루를 넣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필터가 젖을 정도로만 적시고 그다음엔 천천히 필터에 물줄기가 닿지 않게 손을 움직였다. 거품이 볼록 솟아올랐다. 아, 이거! 바리스타 자격증 딸 때의 기억과 카모메 식당의 한 장면이 동시에 떠올랐다. 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돌아와 앉았다. 커피와 케이크 그리고 오키나와 특산물인 흑당 과자와 흑당까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오너상은 "타이완? 홍콩?" 하고 물었다. 우리는 "칸코쿠"라고 대답했다. "아아~ 그렇군요." 영어로 흑당 과자 한입 커피 한입 먹어보라고 권하셨다. 굉장히 잘 어울린다며.
말 그대로 흑당 과자와 커피는 궁합이 좋았다. 달달한 과자가 커피 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게다가 함께 주문한 치즈케이크는 어쩜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는지. 달지 않은 촉촉한 빵과 크림이 입안에서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케이크였다.
이곳의 분위기는 커피숍이라기보다 전통 찻집에 가깝다. 선반과 빈 공간은 꽃과 난으로 장식되어 있고 심지어 화장실 안에도 식물이 분위기에 맞게 놓여 있었다. 바닥은 다다미로 신발을 벗고 올라와야 한다. 좌식 테이블과 방석, 벽과 건물 모두 전통적인 스타일로 아마도 가정집이었던 것은 개조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대충 예산에 맞게 꾸민 것이 아닌 오너상의 취향에 맞춰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대로 꾸몄다고 생각된다. '고상하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장소다. 작은 소품 하나 허투루 고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멋스럽다 생각한 것을 놓아둔 것 같았으며, 그 배치 또한 신경 쓴 것이 느껴졌다. 큰 화분 하나에 작은 장식 품 하나를 같이 둔다던가, 어떤 곳의 장식은 좌우대칭을 꼭 맞추어 놓아두기도 했다. 조명도 공간과 잘 어우러지고 입구에서 느껴졌던 향기마저 어느 하나 오너상의 관심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우리의 옆자리 손님이 나가자 다가온 오너상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여행은 어느 정도 했는지, 바다는 가보았는지, 이시가키는 처음인지 등. 그러다 저녁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마지막 밤이니 만큼 이시가키 소를 먹고 싶다고 했지만 오너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미 인기 있는 가게들은 금토일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격이 굉장히 비싸서 일인당 7-9천엔 정도 나올 것이라는 거다. 그럼 좋은 식당을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리즈너블'한 가격대에 오코노미야끼와 철판구이가 맛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며 선술집을 알려주었다. 게다가 가게가 작다고 예약까지 해주셨다. 구글 지도에도 잘 안 나오는 그야말로 현지인 맛집이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있는 차에 남자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바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실 동안 남자 손님과 오너상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게에 대한 이야기, 이시가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했다.
여긴 대체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손님이 많은 것이 싫은 걸까. 주민들은 여기가 카페인지 알까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식당에 도착했다.
이 식당은 자리가 4개 정도에 바 자리까지만 있는 작은 이자카야였지만 분위기가 깔끔하고 정갈해서 만족스러웠다. 메뉴는 전부 일본어였기에 떠듬떠듬 읽으며 알아볼 수 있는 메뉴만 주문했다. 선택은 해물 오꼬노미야끼와 샐러드, 오리온 맥주와 후르츠 주스. 아마도 일본어를 몇 마디 나누었기에 오너상은 내가 일본어를 잘하는 줄 알고 이곳을 추천해준 것 같다. 음식은 깔끔하고 맛이 좋았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재료를 아끼지 않아 오꼬노미 야끼에 통통한 새우며 오징어, 문어 등이 고루 씹혔다. 옆에 가족이 들어와 식사를 했는데 여러 가지 메뉴가 나올 때마다 흘낏 바라보며 메뉴를 살폈다. 가지각색의 음식이 부러웠지만 어떤 음식일지 몰라서 함부로 따라 주문하지는 못했다. 대신 평소에도 좋아하는 나폴리탄 야끼 소바를 시켰다. 역시나 맛있었다. 저렴한 소시지가 아닌 고급 소시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폴리탄 접시를 비워질 즈음 카페 오너상이 아까 남자 손님과 가게에 들어왔다. 아는 척을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카페 손님과 저녁을 함께 먹으러 오다니! 전에 봤던 일본 드라마의 전개와 정말 비슷한 상황이었다. 항상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사람과의 관계나 여유로운 생활을 눈 앞에서 목격하는 것은 꽤 고무적이었다. 널찍한 공간임에도 일부러 네 개 좌석만 고집한다거나, 굳이 시간이 들여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간판은 없다. 모두 영화로 봤으면 비현실적이라 생각했을 만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생계에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양보하지 않고 마음껏 내보이며, 자신의 가게를 정성스레 꾸미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꼭꼭 숨어있는 그런 가게. 반면에 찾아온 사람은 반가워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오너. 너무 좋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이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쫓기지 않는 삶을 사는 날이 모두에게 왔으면 좋겠다. 느긋한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