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ry! Must be something comforting about the number three, people always give up after three." - 셜록 시즌 4(2017) 중 셜록홈즈(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의 대사 중 발췌.
셜록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은 3이라는 숫자에 안정감을 느끼며,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명한 영화 시리즈는 대부분 삼부작이다. 물론 매트릭스 트릴로지처럼 1편의 명성을 다소 깎아먹는 후속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반지의 제왕 3부작이나 리메이크된 혹성탈출 3부작처럼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 영화 산업에서 3편이라는 기준이 원작의 독창성을 파괴하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90년대부터 수많은 사랑을 받았던 토이 스토리 시리즈 역시 토이 스토리 3(2010)의 아름다운 결말을 끝으로 영원한 작별을 고한 듯했다. 그러나 셜록은 시즌 4로 돌아오면서 위의 대사를 했고, 우리의 우디 또한 토이 스토리 4(2019)로 돌아왔다.
영화는 전편들이 파고든 고민들을 더 깊게 파고들어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이전 삼부작은 아이와 함께 해야 하는의무와 버려지는 공포 사이에서 충돌하는 장난감들을 언제나 다시 아이 품에 돌려주는, 따뜻하지만 다소 보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토이 스토리(1995)에서 버즈와 우디는 장난감의 숙명에 만족하고 토이 스토리 2(1999)에서 우디와 제시는 유한한 삶이라도 아이와 사는 것을 선택하며, 토이 스토리 3(2010)에서 역시 장난감들은 다락방의 삶을 거부하고 다시 새로운 아이의 품으로 간다. 하지만 전편들과 달리토이 스토리 4(2019)는 인간의 시점을 벗어나 우디에게 장난감으로서 자유를 선사하며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숙명을다하는 것을 허락하여 전편과는 결이 다른 새로운 결말을 선사한다.
우디, 포키, 보 핍
앤디의 집을 떠나 보니의 집으로 간 우디는 더 이상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이 아니다. 놀이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보안관 배지를 빼앗기고 몸에는 먼지가 쌓였다.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장난감의 의무라는 점에 비춰본다면 이는 전편들과 같은 위기 상황이지만, 세 편의 영화를 통해 한층 성숙해진 우디는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장난감의 범주를 초월한 존재로 변모한다. 초반부 시퀀스에서 그는 장난감의 선을 넘어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것을 돕는 수호천사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보다 포괄적인 모습으로 장난감의 의무를 다한다. 그 이후로도 우디는 놀이로는 목적을 다할 수 없는 장난감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조금씩 변화하는 그의 의식은 포키와 보를 차례대로 만나며 구체화된다.
보니의 가방을 타고 몰래 학교로 숨어들었던 우디는 아이의 손에 의해 포키가 탄생하는 것을 목격한다. 쓰레기통 속 재료로 만들어진 포키는 장난감의 숙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우디는 이런 포키를 돌보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변화하게 된다. 포키가 우디를 보고 '너도 쓰레기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은 웃긴 장면이지만, 사실 사랑받지 못하는 장난감은 쓰레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산전수전 다 겪은 우디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키가 장난감인 것은 보니가 그의 발에 자기 이름을 써줬기 때문이고, 포키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보니에게 포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디는, 어쩌면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와 장난감을 연결하는 것으로도 의무를 다 할 수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우디와 포키가 길을 걷는 모습은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포키가 우디에게 새로운 목적을 떠올리게 했다면, 보 핍은 그 방법을 제시한다. 보 핍은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발돋움한 여성 캐릭터로, 토이 스토리(1995)의 첫 장면이 우디가 보 핍을 구출하는 시퀀스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괄목상대할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자기 인형은 연약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영화의 첫 시퀀스부터 둥근 막대를 활용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며, 오랜 시간 동안 주인 없이 자립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보 핍은 조언자 또는 조력자를 넘어 우디와 동등한 관계로 올라선다. 그와 우디는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우디는 보 핍에게 자신이 깨달은 장난감의 의무를 다하는 법을 알려주고 보 핍은 우디에게 자립적인 삶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개비 개비, 우디, 잃어버린 장난감
주인공인 우디가 변화했듯 빌런 역시 변화한다. 개비 개비는 전편의 빌런 인형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캐릭터를 다룬다. 개비 개비가 선택받지 못하고 선반에 있다는 것은 토이 스토리 2(1999)의 스팅키 핏을 생각나게 하며, 앤틱 샵의 폭군으로 군림하는 점은 토이 스토리 3(2010)의 라쏘를 생각나게 한다. 이전의 두 영화에서 삐뚤어진 빌런은 결국 주인공과 다른 길로 가게 되며 다소 아쉬운 권선징악 엔딩을 맞이한다. 반면에 토이 스토리 4(2019)는 빌런도 주인공과 같은 방향으로 가게 만들기 위해 포석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이전 두 작품이 빌런의 악행을 반전으로 내세워 위선스러운 모습에 방점을 찍었다면, 개비 개비는 반대로 악행을 먼저 보여준 후 뒤에 온건한 모습을 비춰 장난감이 가진 사연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개비 개비를 악당의 클리셰처럼 등장하게 만든다.
포키와 보 핍을 만나 성숙해진 우디의 의식 변화는 개비 개비를 아이의 품에 안겨주는 것으로 완성되며, 장난감들은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맨 처음 우디는 그의 음성장치를 개비 개비에게 이식하고 완전한 인형으로 만들어 하모니에게 보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쓰레기로 만들어진 포키가 보니에게 가장 중요한 장난감인 것처럼, 장난감과 아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개체의 완벽함이 아닌 상호 간 유대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우디는 개비 개비를 자신의 주인에게로 데려가려 하지만, 이 또한 전편의 해결책을 답습할 뿐이다. 그렇기에 개비 개비는 발을 멈추고 길을 잃어 울고 있는 아이에게 간다. 방황하던 개비 개비는 똑같이 길을 잃은 아이와 만나 가장 필요한 곳에서 마침내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우디의 기나긴 여정도 개비 개비와 아이가 만나는 순간 완성된다. 이제 그는 보니의 서랍 속에서 보니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우디와 보 핍은 주인 없이 자유로이 떠도는 카우보이이며, 길 잃은 장난감을 아이의 품에 안겨주는 목동이다. 그래서 우디는 시리즈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오래된 친구들과 포옹하고 인사하며 수십 년간 목적을 다한 장난감이 바랄 수 있는 합당하고도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토이 스토리 3(2010)의 결말이 앤디의 입을 빌어 장난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면, 토이 스토리 4(2019)의 결말은 그 고마움에 걸맞은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멀어져 가는 밴에서 우디를 바라보며 그의 친구들이 말했듯 그는 잃어버린 장난감이 아니라 자유로운 장난감이 되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떠돌던 세간의 염려를 불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관객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은 매력을 한껏 뽐내며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며, 자칫 비중이 빈약해질 수 있었던 기존 캐릭터들도 빵빵 터지는 유머로 활약한다. 개인적으로 캠핑카를 회전목마로 몰고 가는 시퀀스와 그 전후의 유머는 픽사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웃긴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 전체의 각본을 담당한 앤드류 스탠튼의 말처럼 전편의 결말은 3부작을 매듭짓는 종점인 동시에 시리즈가 '더 크고 깊고 무서워질 수 있는 시작점'이 된 것 같다. 기존의 흐름을 이어가되 예상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과 웃음을 책임지는 것. 이 어려운 것을 픽사가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