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_20250114
지난밤 눈이 소박하게 내렸고 회사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공사 현장에도 흰 것이 자리 잡았다. 신도시의 두 블록을 가득 채운 공사 현장에는 공원이 들어설 참이다. 동이 트면 곧 얼마 있지 않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장비의 투박한 바퀴는 얇게 지표면을 감싸는 저 하얀 장막 아래에 잠들어 있는 흙을 드러내 보인다. 바퀴는 탑승자의 진두지휘에 따라 움직이고 네발포크로 그은 것만 같은 평행한 곡선이 그 뒤를 따랐고 시간의 축적과 함께 의도치 않은 다양한 패턴을 남긴다. 가까이서는 매연과 소음에 가려 볼 수 없을 테지만 가청 거리 밖에서 멍하니 내려다볼 수 있는 나는 우연의 산물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이른바 "공사장 눈 예술"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가상의 선으로 구획을 나눠 패턴을 분류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나무를 닮았고 어떤 것은 심장을 닮았다. 그렇게 하나씩 분류하다 보면 알고 있는 무엇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 자체로 예쁜 어떤 그림을 만나게 된다. 동그란 형태가 인상 깊지만 동심원을 그리지 않는다. 북쪽의 곡선의 곡률이 남쪽의 곡선의 곡률과 일치하진 않지만 서로 어우러진다. 자세히 보니 마냥 닫힌 계가 아니라 외부와 소통한다. 무언가 나갔다 들어왔을 것 같다. 교실 천장의 무늬만 보아도 닮은 선생을 찾아내던 숙련된 망상가도 쉬이 닮은 것을 찾지 못한다. 그저 예쁘다 느낄 뿐이다. 그것과 닮은 것을 찾아낸다면, 그래서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 이름이 현상을 잡아먹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얇은 눈처럼 녹아내릴 것이다. 가상의 격자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 다른 시점에서는 보이지 않았을 것, 무언가를 닮지 않았음에도 예쁜 것으로 남아야 한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사내 규정 상 여의치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비디오 생성 모델을 호출한다. 대규모 언어 모델의 도움을 받아 프롬프트를 작성한다. 지나치게 상세하진 않되 유추할 수 있을 상황을 부여한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공사장. 얇게 쌓인 눈 위로 중장비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 만든 패턴". 현상이 말을 만들었고 말이 현상을 만든다. 나는 두 세계의 간극이 마냥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