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_250119
작년 시월 노벨 문학상이라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고 내 마음 한편에 책더미처럼 쌓아뒀던 한강 읽기에 대한 부채의식이 무너졌다. 명색이 독서모임 회원이라 한 달에 한 권을 읽는데 그중에 한강의 책이 한 권도 없었다. 구성원이 다 직장인이라 힘들고 긴 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의식 중에 한국 문학보다 외국 문학을 고평가 하는 편협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여섯 명이 매달 한 명씩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는 체계 속에 나는 연례행사처럼 그 해 노벨 문학 수상자의 출세작을 고르곤 했는데 그 이름 사이에 한글로 쓰인 이름이 있다는 사실에 아이처럼 기쁜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한국 문학의 성실한 독자가 되고 싶은 투지가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나는 급한 한강 읽기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회사에서 도서구입비가 지원되기에 지난 십일월부터 지금 일월까지 달마다 한 권씩 총 세 권의 책을 구매했다. 작년 십일월부터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순서로 읽었고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채식주의자는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내었지만 소년이 온다를 읽은 첫날 나는 먹먹한 마음에 삼십 분 만에 책을 덮었고 다시 읽기로 마음먹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흔히 한강의 소설을 두고 산문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그 산문 같은 문장들이 사람 마음을 녹이는 용해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녹은 마음이 붉은 속살이 드러난 채 소설 속 세계와 접촉하는데 그것이 5월 광주라는 잔혹한 역사일 때 촛불을 손으로 끄는 듯한 뜨거움을 느끼게 된다.
소년이 온다는 5월 광주를 역사의 맥락에서 보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 그가 보는 것은 그 참상에서 죽거나 이후에도 살아가야 할 여섯 사람이다. 한강은 대화를 따로 따옴표로 구분하지 않고 그것이 하나의 화자로부터 나온 듯 연결하고 구분되지 않는 거대한 덩어리를 만든다. 그날의 참상은 그 덩어리의 일부분일 뿐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그날 훼손된 여섯 사람의 삶이다. 여섯 사람의 집단적 증언이 끝난 후 떠오르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동호라는 한 소년이며 비로소 제목의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엄마의 손을 잡아끌며 밝은 곳으로 걷자 하던 그 아이가 돌아온다. 비극적인 참상의 희생자가 아니라 동호라는 이름을 가진 평범한 한 소년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