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현관문을 소리 없이 열고 들어온다.

수필_250121

by 박강제

언젠가 너는 물었지. 결혼하고 행복하냐고. 여름의 훈기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날이 어둑해지던 저녁, 시끌벅적하던 테이블과 여럿이서 나눠먹은 메뉴가 조각보처럼 간신히 붙어있던 그 혼잡한 틈 사이로 네가 했던 그 질문은 천을 뚫고 나오는 바늘처럼 튀어나왔다. 신혼의 단잠을 즐기고 있던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했고 그 자리에서 말했고 싱거운 문답은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그러나 문득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네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행복한 건 사실인데 나는 결혼 전에도 행복했던 것 같은데? 나는 결혼을 하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나 자문했다. 서로를 데려다주는 그 순간이 사라진 것은 감사하지만 무언가 더 있을 터였다.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순간을 맞이했다. 그날은 눈이 일찍 떠졌다. 나는 다섯 시 반부터 여섯 시까지 수면 상태에 맞춰 울리는 수면 어플을 사용하는데 다섯 시 반에 딱 일어나게 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아내보다 출근 시간이 이른 나는 살금살금 방을 나와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옷을 입었는데 모든 준비를 다하고도 십 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할 것도 없어 방으로 돌아왔는데 나도 모르게 잠든 아내 옆에 누웠다. 자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암막커튼 틈새로 새벽의 푸른 서광이 스며들었고 고요한 세상 속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숨의 오고 감과 함께 부풀어 올랐다 사그라드는 아내를 바라보며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이마에 코를 대 냄새라도 맡아보았다. 평화로운 그 순간이 참 완전했다.


행복은 예기치 않은 시간에 현관문을 소리 없이 열고 들어온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문지방을 넘는다. 흐린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묘한 장면 속에 행복이 있다. 좁은 저녁에서 둘이 요리하다 겹쳐버린 동선에 있고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시시콜콜 나누는 대화 속에 있다. 얼마 전 지하철 역에서 집으로 가던 아내와 나는 내리는 눈을 보고 버스 대신 걷기를 선택했다. 이십 분 남짓한 어둑한 거리를 걸으며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는데 아내는 종종 그 순간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눈 밟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와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특별할 것 없는 그 길을 종종 떠올릴 것이다.


다시 너를 만난다면 말해줘야지. 나는 행복하다고. 내가 할 일이라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뿐이라고. 작고 소중한 아내와의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마음의 눈을 벼릴 것이다. 그렇게만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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