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간 걸려 영화를 보러 간 사람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2025)를 보고

by 박강제
용인 사는 사람이 홍대까지 가는 거면 그건 사랑인데.


눈앞에 치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예매를 하는 내게 아내가 장난스레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선으로 생긴 징검다리 연휴에 혼자 연차를 쓴 나는 전날에서야 홍상수 영화를 떠올렸다. 오월 중순에 개봉한 그 영화. 홍보도 마케팅도 없는 그 영화. 정작 챙겨보던 나조차도 미션임파서블을 보고 까먹은 그 영화. 생각났을 때는 이미 다 내려간 그 영화를 몇몇 작은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사실에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휩싸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극장에 찾아가 좌석에 앉는 것이 관객의 도리마냥 생각되었고, 놓쳐버린 시간을 만회하는 기회처럼 느껴졌다.


황금 같은 연차를 쓰고 용인과 홍대를 오가는 왕복 네 시간 남짓의 여정에 부대끼며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자문했다. 현 상황에 의문이 생길 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를 떠올려야 한다. 내가 홍상수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18년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게 홍상수라는 존재는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분명 한국 영화계의 중요한 존재 같은데 - 작품을 보지 않았으니 스캔들 말고는 아는 것이 없고 - 주변에 그의 작품을 본 사람이 없으니 볼 마음도 잘 안 드는 - 알긴 알되 통 모르는 사람이었다. 근데 그런 사람이 스캔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영화를 만들어 큰 상까지 받았다는 뉴스를 보자 마음이 동했다. 미약하지만 떨치기 힘들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야 하는 가를 줄곧 고민하다가 결국 넷플릭스에 출시한 후에야 구매해 원룸에 누워 봤고 난 그 순간부터 영화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심상하게 시작하는 그 영화는 어느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뻤다. 영화가 끝나고 며칠간 이 영화가 주는 감상을 '좋다'라는 단어 외에 표현할 수 없음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때까지 봤던 어떤 영화의 문법도 따르지 않으면서도 영화가 아니라할 수 없는 모순이 나를 당황케 했다. 그래서 공부했다. 학교에 있는 영화와 관련된 교양을 모조리 수강했다. 한국과 할리우드가 아닌 다른 나라의 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평론가의 글을 주의 깊게 읽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다'라는 단어 외에 지금 이 감상을 표현할 단어와 문장을 찾고 싶었다. 그걸 찾지 못하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글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에 졸업 후 6개월을 카페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2025)는 달콤 쌉싸름한 영화다. 여자친구의 집을 방문한 남자는 도통 떠나지를 못하는데 처음 만난 가족과의 대화 속에서 스스로를 노출하게 되고 결국 감추고 싶은 마지막 꺼풀마저 벗게 된다. 중반부까지 따뜻함에 가득 차 영화를 보다가 점점 씁쓸해지는 입맛에 주인공(하성국 분)에 20대 내 모습을 겹쳐보기도 했다. 그는 자연에서 무엇을 들었을까? 형용할 수 없는 감상을 말 그대로 형용하지 못해 무너진 것은 아닐까? 부족하고 모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결국 연민하게 되는, 속살 같이 빨간 인간적 감정을 자연에 가까운 형태로 전달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