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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지 Jul 15. 2024

왜 불행한가

왜 불행(不幸)한가. 왜 얼굴에 기쁨이 없는가. 왜 말투에 즐거움이 묻어나지 않는가. 항상은 아니고, 주된 감정을 얘기하는 거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낯빛을 말하는 거다. 


20대 초반엔 불안(不安)했다. 오늘의 새로움을 느끼는 만큼 내일이 불안했다. 한낮에 커피를 마셨을 뿐인데 심장이 미친듯이 뛰거나 숨이 안 쉬어지기도 했다. 앞에 놓인 수만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했고 불안함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여전히 초조하고 조급하긴 했어도 안정이란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환경이 척박해도 동료들과 마음이 잘 맞으면 그곳에 더 있을 만하다고 느꼈다. 담임 선생님과 애정어린 독서 편지를 주고 받던 미국에서 돌아와, 검정이나 남색 겉옷만 허용되던 한국 중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다. 매일 같이 부조리에 시달렸지만 함께 급식실 맨 앞줄에 서고 제일 늦게 식판을 반납하는 친구들이 있어 전학가지 않았다.


취직하고 납득되지 않는 위계 질서와 상사의 고압적 태도, 고성과 욕설, 자유의지 박탈, 때없는 모욕과 비하, 정신과 상담을 받는 동기, 사내 정치, 상습적인 뒷담화를 겪었다. 독립을 위한 경제적 안정이 필요했고 근 몇 년은 여러 선택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단순함에 버텼다. 예기치 못한 재미와 동료들을 얻은 순간도 있어서 한동안은 마취 상태였기도 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진 않았다.


실제로 이만큼 불행하면서 안정감과 약간의 재미로 고통을 계속 감내할 수 있을까? 밤에 분노를 다스리는 명상을 하고 잔다 한들 출근하자마자 보이는 그들의 말투와 행동에 금방 마음과 얼굴이 구겨진다. 이 일만이 살길이 아닌데, 뭘 위해서 저들의 비아냥과 무능력, 무지, 무관점을 견뎌야 한단 말인가. 다시 불안의 길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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