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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즈맨 Jan 12. 2022

자유에는 거절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종종 기분이 우울할 때면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 라고 쓴다면 몇몇은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또 몇몇은 '흥, 아는 척 시작이구만.' 이라거나, '그 와중에 일본 작가라니'라고 혀를 찰 것이다. 내가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후자처럼 생각한다면 정말 슬프겠지만 이사 오고 책을 얼마 사지 않아서 나의 책장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4권 있고, 자기 계발서가 한 권, 선물받은 책 한 권, 패션 잡지 한 권이 꽂혀있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꽤 빈번하게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나의 일상에 대해 딱히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단지 유쾌하기 때문이다. 심연의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누구의 마음이든 그렇게까지 알고 싶지 않다. 이제는 조금 부담스럽다고 해야하나), 어떠한 사건이나 일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자신의 생각을 퍼올린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솔직해서 좋다. 엄청나거나 섬세한 심리적 묘사가 있거나, 3페이지에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90페이지 쯤에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는 태도가 터무니없이 인간적이라 마음에 든다.



분명히 내 입으로 좋다고 말은 했으나 모든 내용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가령 어떤 출판사에서 자신의 책을 장편 소설 모음선 중 하나로 엮는 과정에서 자신의 완고한 태도로 벌어진(책에서는 직접적인 이유는 아닌 것으로 서술한다) 담당자의 자살 이야기나, 딱히 투표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빈번하게 드러내는 등등의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다. 반댓말인 불쾌에 가깝다.



나는 한 번 다 읽은 책은 좀처럼 다시 보지 않는 성격인데, 다른 어느 책들보다도 그 책을 많이 찾는다. 글을 잘 썼다, 문장이 수려하다와 같은 고상한 이유가 아니다. 종종 나도 하는 저질의 생각, 자기 합리화, 아집같은 것이 그 책에 보이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레퍼런스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얼마전 회사에서 남자들끼리 작은 회식을 했다. 그래봤자 3명 밖에 안 되니까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앞으로 회식은 어떻게 해야할까, 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사실 본부장님과 팀장님은 나한테 회식을 하자고 하는 것이 나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직급, 상황, 돈 뭐 이런저런 문제로 내가 거절이 어려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문제가 될 건 없더라도 사실 우발적인 회식을 100% 좋아하는 회사원이 어디 있겠는가(좁은 내 경험 안에서는). 회사가 꽤 수평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다 보니, 그러한 걱정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뭐.. 본부장님이나 팀장님께서도 저한테 편하게 물어보시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저도 편하게 거절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술도 좀 먹고 해서 수평적인 태도로 내 생각을 말했다. 진짜 평소에 생각하는 걸 얘기했을 뿐이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술이 천천히 깨면서 나는 내가 한 말을 곱씹다가 예전 직장 다닐 때 엘레베이터에서 만났던 어떤 사람의 불만을 떠올렸다. 그 사람은 '요즘 신입사원들이 무섭다'며, '무슨 말도 못 꺼내겠다'고 말했다.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우리 회사의 본부장님도, 팀장도, 엘레비이터의 그 사람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것보다 어떤 말이든 거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더 자유라는 의미에 가까운 상황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이야기로부터 주제를 뽑기 위해 회식 이야기를 예시로 들기는 했지만, 비단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다행스럽게도 조금 남쪽에서 태어나 자유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육식주의든 채식주의든, 페미니즘이든 마초이즘이든, 모든 주제와 문제와 생각에 대해서 동의하거나 거절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각과 성향은 채소나 발효 식품이 아니기에 <성숙도>로 따지고 싶지도 않다. 그냥 누군가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마음은 슬프겠지만 내가 이런 글을 쓴다면 나를 거절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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