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가진 단순한 열정
나는 스포츠를 꽤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대학생까지 학교/과대표로 축구 경기를 뛰었고, 짧은 기간이지만 농구 학원을 다녔으며, 가족들(정확히는 아빠와) 하는 배드민턴을 좋아했다. 최근에는 런닝을 간간히 뛰고 있다. 투자한 시간이나 돈을 생각하지 않고 그게 얼마가 되었든 간에 어쨌든 따져 보면 내 인생에서 운동은 꽤 친밀한 개념이고, 그렇다 보니 자신 스스로 꽤 스포츠 정신-비스무리한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느 쪽이야? 라고 한다면 물어볼 경우)
다만, 승부욕같은 개념은 평소의 내 생활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 적출을 당한 것 같이 내게는 남들과 경쟁에 대한 욕구라는 것이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욕구라기 보다는.. 경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쪽에 더 가깝다고 해야하나. 부딪치며 날카로워지는 것보다 스스로 형태를 잡고 싶은 느낌이다(혹시 공감하나요?).
라이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다. 공부나 축구나 패션이나..내가 뭔갈 하면 그것에 대해 꼭 한마디 평가를 덧붙이는 친구가 있었다. 아무튼 그럴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다가 20살 때 마련된 반 전체 술 자리에서 그 친구가 내게 '난 너를 라이벌로 생각했어'라고 고백해버렸고, 사실 승부욕이라면 모를까 눈치는 꽤 있는 편이었던 나는 그것을 진작 알아차리고 있던 터라 별 문제없이 지나갔다..고 말하기엔 지금은 별로 친하지 않아서 민망하다.
그러한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포츠에 관련된 콘텐츠에 열광한다. 보통 축구 관련된 것들은 자주 챙겨보는 편이고, 평소라면 잘 보지 않을 배구/농구/육상 등의 소재를 활용한 콘텐츠를 좋아한다. 몇년 전에는 배구를 소재로 한 만화 '하이큐'가 그랬고, 이번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그랬다.
사실, 슬램덩크 자체는 워낙 유명한 만화였기에 이런저런 명장면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만화를 본 적은 없었는데, 그것은 옛날 만화 특유의 어색한 더빙이라든가 아찔한 화질 등 다양한 이유로 늘 시작에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콘텐츠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를 낮추기 위해 맥주를 마시기도 해봤으나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역시 술로 문제를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의 형태로 개봉을 한다기에 기대가 됐고, 주말을 맞아 할 게 없던 나는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건 대부분의 관객이 남자이며 중년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 관객들도 있었으나 중년의 남성들을 억지로 따라온 것처럼 보이는 표정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면 영화 자체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극히 일부(로 보)였다.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오프닝 도입부, 인물과 사물을 표현하는 만화와 현실 사이를 가르는 듯한 굵고 얇은 선들, 익히 알고 있는 명장면, 극적인 장면들에 대한 연출이 합쳐지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가슴 속에 뜨거운 승부욕이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따뜻한 괜찮음이 느껴졌던 스포츠 영화였다. 만화를 보며 긴장을 했다면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등에는 잔뜩 땀이 나고 말았다. 그래봤자 만화 아니냐며 그저 영화관 실내가 더웠던 거 아니냐고 물어본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혹시 나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사실 스포츠 영화.. 아니 일본 영화 특유의 교훈을 주는 방식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지나친 부분없이 단순하게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담아내서 오히려 좋게 느꼈다. 슬램덩크의 인기가 지속되는 것은 그러한 단순함에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감탄하는 부분들이 보통 그런 장면이었다. 경기 에피소드가 주요 이야기지만 중간중간 주인공 캐릭터의 이야기가 회상식으로 자주 등장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하다. 뭐 나같이 슬램덩크를 처음 보는 사람은 이야기가 느껴져서 좋았지만, 이미 '알 거 다 아는' 사람들은 경기 하이라이트 중간중간 30초 광고가 나오는 꼴이니 그러한 답답함도 이해가 된다. 그래도 이건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영화니까 어떻게 안 될까요.
혼자 봐도 즐거웠지만, 누군가와 함께 보면 즐거울 것 같아 한 번 더 관람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