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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로 Nov 06. 2022

미녀는 외로워

마릴린 먼로와 아나 데 아르마스, 둘 모두 외로운 <블론드>

홍보가 시작되고 여러 스틸샷이 여기저기 뿌려질 때 아나 데 아르마스가 분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꽤 그럴듯해 보였다. 저 정도 싱크로율(?)이면 앤디 워홀에다가 써도 될 거 같다 싶기도 했고.

그리고 머잖아 넷플릭스에 공개가 되었고, 여기저기 평에 오르내렸다. 대부분은 혹평이었다. 최대한 쳐줘도 호불호가 갈리는건 확실해보였다.

러닝타임이 짧지도 않다. 2시간 반을 넘어간다. 요즘같은 시대에 시간과 집중을 좀 들여야 한다. 그래서 한동안 넷플릭스서도 미뤄놨다. 내가 긴 영화 싫어하는거는 아닌데. 요 몇년동안도 3시간 넘는 <작가미상>이나 4시간에 육박하는 <고령가소년살인사건>도 재밌게 봤었다.


그러다 어느날 보기로 했다. 겉보기엔 멀쩡히 홍보되는 영화가 왜 저렇게 혹평이 나오는지도 궁금했고, 어차피 아나 데 아르마스가 제대로 연기하는걸 언젠간 보고싶기도 했으니. 난 그녀를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처음봤었는데 그녀가 배우로 더 나아가려면 이렇게 정면으로 나서는 영화를 언젠간 맞닥뜨려야 하긴 하니까.


전반부까지는 그럭저럭 봤다. 그 중에서도 초반부가 가장 좋았다. 어릴적 그녀의 감정이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활활 불타올랐는데 나름 인상적. 그런데 이후엔 엄청 몰입도가 높고 그러진 않아서 중간중간 끊어가면서 봤던거 같다. 아버지의 부재로 공허감에 시달리며 버림받은 딸이라는 자신의 결여를 채우려 방황하는 여자라니 어떻게 전개될지가 너무 뻔하잖어. 그래도 여기까진 뭐 그럴 수 있다 하면서 볼만하다. 근데 왜 이렇게 혹평이 많지?


이 영화는 후반부가 진짜다. 호불호가 갈릴만한 부분, 이 영화의 특징이랄 수 있는 부분, 이 영화에서 부각시키고자 했던 부분 다 후반에 집약돼 있다. 혹평이 대부분일만 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장면들이 너무 과하다. 특히 후반부가 더 그렇다. 굳이 이 신을 저렇게 넣을 필요가 있었나 싶은 대목이 여러군데다. 구태여 일일히 어떤 장면인지 묘사할 생각은 안든다만(스포방지를 위해서기도 하다.), 성적인 장면이 대단히 노골적으로 나오는데 그게 포르노그라피 개념을 가져와서 설명을 해야 할 정도로 야한 자극을 위해서 나온다고까지 보이진 않는다. 너무 노골적인 클로즈업은 거부감만 드니까. 노골적인 장면들이 기괴한 구도에서 등장하는건 맞다. 내가 현대 프랑스철학쪽 사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이 영화신에 대한 묘사도 전혀 아니지만 지젝의 다음 글을 인용하는게 여기선 가장 맞아보인다.


가령 여자 성기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장면, 게다가 진입 중의 딜도의 머리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지점에서는 어떤 전회가 일어난다. 욕망의 대상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게 되면, 성적 매혹은 구토로 전환된다. 맨살덩어리의 실재 앞에서 구토하게 되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탈이데올로기>-

[오역의 수정은 블로거 로쟈의 견해에 따름. 출처: https://blog.aladin.co.kr/mramor/popup/4068688]


영화에서의 심상과 너무 겹쳐서 혹시 감독이 지젝을 본건가 싶을 정도다.


다만 그런건 있었다. 저런 성적인 씬이 이렇게까지 슬프고 처연하고 고통스럽고 고독하게 느껴질수가 있구나. 분명히 야한 장면이다 싶은데 성욕을 전혀 자극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노골적인 신이 그쪽 욕망을 거세시킨다고 해야하나.(앞서 언급한 맥락과도 연관될 것이다.) 왕성한 한창의 가을 남자에게도 분명한 거부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런 부분은 흥미롭긴 했다. 감독이 의도한거라면 그건 성공.


이 영화는 화려한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 뒤에 가려진 노마 진을 끝없이 부각시키려 하지만 이 영화가 거기에 성공했을까. 잘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싶어 하던, 진짜 그녀 노마 진은 그걸 보여주려 한다는 제작의도를 암시하는 노골적인 대사들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엔 나온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실제로 그녀가 어떠했었는지는 알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녀가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오래전이다. 그렇더라도 초지일관 아빠만 찾으며 부유하는 저런 여자가 노마 진이라고 상정하기 어려움은 구글 검색창에 'Marilyn Monroe' 한번만 쳐봐도 알 수 있을것 같다. 물론 이건 다큐가 아니다만, 이러면 홍보로 얘기된거랑은 거리가 멀다. 비련의 여주인공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그닥 나쁘지 않게 볼수도 있을것.


더불어 세상의 욕망이 한 여자를 얼마나 고독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마릴린 먼로'라는 그 이미지에 자기도 모르게, 그러나 무의식적으로나마 스스로 부응해가며 여자가 어떻게 망가져가는지를 보여주는 데에도 나름 성공했다고 본다. 특히 앞서말한 기괴한 장면들의 심상과 함께 결합되면 그 체험은 생생함이 더해진다. 여자라면 누구든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어할터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문제되는건 그 경험을 맨처음 줄 아버지가 노마 진에겐 등장하질 않는다는거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그녀는 그 컴플렉스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리고 너무 그게 반복되기만 해서 좀 피로하기도 하다.


미녀는 외롭다. 다름아닌 미녀라서 그 외로움이 더할 수도 있다. 예쁘니까 존중받고 대우받고 떠받들어지는 기분, 그건 다른걸로 대체하기 힘든 느낌일거다. 그런데 그녀든 세상이든 그것’만’에 미쳐있다면. 그건 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사랑받는 감정, 엄밀히 말하면 이쁨받는 경험은 필요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미녀 이미지'만' 계속되면 인간을 소모시킨다고 생각한다. 좋음은 균형에서 온다. 세상의 그 모든 좋은 감각이 과도하면 해가 되는 것처럼. 그 이미지를 내뿜는 사람이든 거기에 매혹되는 사람이든 모두 그걸 향유하는건 마찬가지고, 그게 도가 넘으면 모두에게 어떤식으로든 부작용을 남긴다.


그녀는 미녀이기만 해서 외로워도 보인다.


그녀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려면 무엇을 필요로 했을까하는 질문도 던지게 되더라. 단순히 사랑받고 싶다는 것 외에 자기 삶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어야 하진 않았을까. 그게 사람에 따라 앞서의 것이 어느정도 채워져야 가능한 단계일지는 몰라도.


이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에 가려진 노마 진의 외로움이 진하게 나타난다면 주인공의 열연 뒤에는 배우 아나 데 아르마스의 고독함도 함께 묻어나왔다.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연기는 이상하게 처연하기까지 하다. 그녀가 연기를 못한건 아니다. 아니, 그녀는 분명히 열연했다. 이걸보고 연기를 못한거라 평가할 사람은 없을거다. 주인공도 실제 마릴린 먼로의 모습 그대로다. 너무 생생하다. 정말 그 옛날 동일인물같이 찍었다. 몇몇장면은 실제 마릴린이 연기한것처럼 헷갈릴 정도다. 그럼에도 이게 원했던만큼 배우로서의 명성을 안겨주진 못할거 같다. 거의 대부분 감독탓일거 같긴한데, 그녀가 작품보는 안목도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열연은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소비된다고 해야하나. 분명히 연기 엄청 잘하고 있는데 앞서 말한 영화의 여러 기괴함 때문에 그게 감정적으로 온전히 와닿질 않아 보인다. 캐릭터가 지나치게 전형적이라는 것도 작용을 하겠지만 영화가 조화롭지 않고 열연하는 그녀만 혼자 붕 떠 보여. 영화에서는 그녀의 열연만 온전히 봐줄만 하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엄청 예쁘게 나오긴 한다. 이 영화의 괴이함들에서 유일하게 미적으로 보이는? 그래서 더 고독해보인다. 극 중 후반부에서 그녀에게 열광하는 세상이 마릴린을 외치는 씬이 아름다운 그녀와 대비되게 기괴하게 나오는데, 난 그게 세상과 노마 진의 구도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 전체의 기괴함과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열연의 구도처럼도 보였다.


외로운건 마릴린 먼로였던 노마 진만이 아니었던거다. 마릴린 먼로로 분한 아나 데 아르마스의 지극한 연기도 그러했다. 쓸쓸했다.


이 영화가 총체적으로 못만든 영화는 아니다. 편집의 실패로도 보인다. 후반부 몇컷만 어떻게 했어도 이 정도로 평을 받을건 아니긴 했다. 최소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제대로 그려낸 작이 되었을게다. 그런데 논란의 그 컷들 다 남겨둔 거도 감독이 고집한거라니 별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영화는 그래서 여러모로 슬픈영화다. 성적자극을 의도한 야한영화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대척점에 가깝다. 마릴린 먼로와 아나 데 아르마스, 두 미녀의 외로움이 다른 층위에서 처연히 드러나는 영화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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