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 글루텐 프리
6년 전,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면서 여행을 당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고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잘한 일인 것도 맞지만, 당장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곤 한다.
약 200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이방인이 되어 돌아다니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서로만 바라보고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지내야 했다.
살아온 환경도 살아가며 그리고 싶은 그림도 아주 다른, 어쩌면 대척점에 있는 두 남녀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ESFP와 INTJ의 만남이랄까.
누군가에겐 처절하게 매달렸던 인맥 만들기의 시간이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돈 낭비가 되기도 하고 갑자기 개가 되면 어떻겠냐며 누군가에겐 쓸데없는 망상을 펼치며 상황을 가정하고 무의미한 답변을 요구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정말 절실할 작은 공감과 위로가 누군가에겐 위선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 잘될 거야.'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대책 없음'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성별이라는 좁힐 수 없는 생물학적 간극에 비롯되어 생각의 출발이나 메커니즘 자체가 다른 신인류를 마주하여 때론 납득시키고 때론 양보하며 어우러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몇 번의 회피를 경험한 후 회피는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민낯이 드러난다.
벌거벗은 채 서로를 내보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은 벌거벗은 자신을 마주하며 혼란에 빠진다. 그동안 알아왔던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품는다.
4년의 연애 기간을 거쳤지만 결혼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6년을 함께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녀를 보며 새로운 세상을 배운다.
요즘 그녀의 화두는 '글루텐 프리'다.
항상 장이 좋지 않아 고생하던 그녀는 마음대로 화장실을 갈 수 없는, 가더라도 유료 화장실을 가야 하는 장기 해외여행이 도화선이 된 건지 급격히 장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먼저, 술을 끊었다. 원래 술에 큰 흥미가 없어 소주 한두 잔이나 맥주 한 병 정도로 분위기만 맞추던 그녀는 결국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치킨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을 거라던 그녀는 치킨의 껍질을 벗겨 쌓아 두기 시작했고, 그 과정이 성가셨는지 아니면 그 잔해가 흉했는지 점점 치킨과도 거리를 두었다.
다음 타깃은 매운 음식이었다. 매운 음식도 문제없다면서 실상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들이켜는 나에 비해 막상 먹으면 평온하게 맛있게 잘 먹던 그녀는 언젠가부터 자기는 매운 걸 못 먹는다며 고추만 그려져 있어도 피하기 시작했다. 김치찌개 정도가 마지노선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집 주방의 풍경도 하나씩 바뀌기 시작했다. MSG와 설탕은 자취를 감췄고 식초는 애사비(?), 기름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로 바뀌었다. 갑자기 유당불내증을 호소하며 우유 대신 두유를 마시기 시작했고, 밥에는 꼭 콩이 들어가며 각종 잡곡밥으로 변했다. 모든 과일은 베이킹 소다로 세척을 마친 후 먹을 수 있게 되어서 가장 좋아하는 귤을 박스째 사는 게 두려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글루텐 프리에 이르렀다.
면, 피자, 빵 등 밀가루가 들어간 모든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런 방면으로 무지했던 나는 덕분에 많은 걸 알아가고 있는데 웬만한 과자, 아이스크림이 모두 밀가루고 각종 장, 소스들도 밀가루가 첨가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아주 긍정적이면서도 웬만한 의지력으로는 쉽지 않을 대단한 변화이지만 같이 사는 사람으로선 사실 꽤나 고충이 컸다.
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어 장 보는 것도 쉽지 않았고 가끔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보상처럼 먹던 야식이 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집에서 해 먹는 모든 음식의 재료는 한정적이었고 대체로 싱거웠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걸 그녀는 먹지 못하지만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건 내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모든 식단이 그녀 위주로 맞춰졌다. 배달 음식이나 외식도 마찬가지이다 보니 불만은 쌓여갔다.
하지만 그녀와의 싸움에서 나는 이길 수 없었다. 쌓여가는 불만과는 달리 몸은 덜어지고 있었다. 겪어보니 알게 됐다. 원래부터 그런 줄 알았던 더부룩함이 사라졌다. 가끔 모임이 있어 과음을 하지 않는 이상 속병을 앓는 일도 없어졌다. 자연스레 살이 빠지고 몸의 태가 좋아졌다.
그래서 나도 한번 밀가루를 끊어 볼까 하고 시도해 본 적도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현재 그녀의 글루텐 프리는 이곳 말레이시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나보다 음식에 관심이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 그녀는 나를 먹이며 대리만족한다. 말레이시아에 왔으니 말레이시아에서 유명한 음식을 꼭 먹어봐야 한다며, 대신 나에게 미(면 요리), 로띠, 카야 토스트, 락사 등을 먹이고 반응을 살피고 궁금해한다.
게다가, 해외살이를 하는 특수한 상황인 만큼 면이나 빵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한국이었다면 귀가 꽤나 따가웠을 텐데, 한국을 떠나와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 중 하나다.
오늘도 나는 기도를 하며 잠이 든다.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일만은 없기를.
나무아미타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