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하지만 강한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by 한가온

봄이 오면 꽃이 핀다. 그리고 그 꽃을 본 어른들은 종종 이런 말씀을 하곤 했다.


“참 기특하지 않니? 이렇게 스스로 꽃을 피운다는 게.”


계절에 따라 자연의 모습이 바뀐다는 건,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이치였기에 어른들이 느끼는 그 ‘기특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바였다.

그럼에도 4월 초순 즈음엔 늘 화사한 옷을 입고, 꽃과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은 내게 빼놓을 수 없는 연례행사였다. 그건 꽃을 피운 나무의 기특함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지 그 꽃들의 ‘예쁨’을 남기고 싶어서라고 해야 될 것이다.


매해 그랬듯 이번 봄에도 가벼운 옷을 입고 벚꽃 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추위도, 이제는 정말 다 끝났구나.’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 기사 따위에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여, 겨울에도 평균 기온이 높아지는 이상 기후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며 우리를 불안에 몰아넣었다.

그 경고에 불안해했던 스스로가 민망해질 정도로, 저번 겨울은 여지없이 추웠다. 그리고 평생 봄이 도래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을 더 걱정해야 했었다. 추위와 싸우며 지낸 4-5개월. 결국 봄을 샘낸다는 심술 맞은 추위까지 몰아낸 4월. 거리엔 하나둘 목련이 고개를 내밀었고, 개나리가 자그마한 입을 벌렸고, 벚꽃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래서 기특한 존재들이었구나.

가지가 얼어붙는 차디찬 계절에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켜내고, 결국 꽃을 피워 생명력을 증명한 그들.

얼마 뒤 비가 내리면 꽃은 다 떨어지겠지만 이마저도 또 다른 새싹을 키워내기 위한 과정일 테다. 새 잎을 내기 위해, 그리고 열매 맺음을 위해 저렇게나 아름다운 꽃을 떨구는 희생마저도 기특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자연의 저 생명력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한 자기 성장의 모습이 아닐까.


김영랑은 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이 피는 순간의 황홀함을 일 년 내내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란의 개화와 동시에 슬픔도 함께 느낀다. 그에게 모란이 피었다는 사실은 곧, 모란이 지는 슬픔도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정말 기다려온 순간이지만 ‘찬란함’과 ‘슬픔’을 양가적으로 느껴야 하는 역설적인 부분이다.


나는 생각을 바꾸어 보기로 한다.

꽃이 피고 지는 것, 잎이 나고 떨어지는 것, 그 모든 건 결국 자연의 성장이다. 져버린 꽃은 새 잎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고, 떨어진 잎은 열매로 다시 태어나며, 벌거벗겨진 가지는 꽃봉오리로 또다시 태어날 테다.

그러니 일순간의 ‘예쁨’이 지더라도, 나무의 생명으로 봐주자는 것.


순환의 질서는 생각보다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러니 꽃을 피운다는 건, 더없이 기특한 일인가 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_김영랑
추운 겨울을 이겨낸
이 세상의 모든 연약한 존재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한가온 올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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