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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 Nov 15. 2024

사막, 나에게는 처음
너에게는 또 다른.


나트랑행 비행기에 올라타기 사흘 전에서야 비로소 '나트랑 가볼 만한 곳'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검색어를 타이핑하는 내 마음 한편에는 알고리즘이 '색다른' 곳을 추천해 주기를 바랐는데, 그도 그걸 것이 나에게는 이번 나트랑 여행이 처음이었지만, 동행자인 친구 혜수에게는 벌써 네 번째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여러 번 와 본 곳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이곳이 처음인 나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음을 짐작하고 있던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가보지 않았을 듯 한' 관광지에 동행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알고리즘 타기를 두 번 정도 반복했더니 나름 신박하다고 여겨지는 여행지가 눈 앞에 나타났는데 바로 '판랑' 사막이었다. 나트랑 시내에서 차량으로 왕복 4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꽤 긴 여정이긴 했지만 감안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한 나는 혜수에게 판랑 사막 투어를 제안했다. 


그녀는 유쾌하게 대답했다. 

"사막? 그래! 나도 나트랑에서 한 번도 안 가봤다. 우리 가보자!" 



판랑 사막투어는 아침 9시부터 시작되었다. 왕복 4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했기에, 이른 아침 출발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차창 밖으로 펼쳐질 베트남의 풍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니 이 마저도 기대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투어 버스에 올라탔는데, 현지 여행사를 통한 투어였음에도 모든 관광객이 한국인이었다.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두 시간은 생각보다는 짧게 느껴졌다. 나는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이내 잠에서 깬 후 창 밖으로 이어지는 베트남의 시간을 차분히 느꼈다. 이내 우리가 탄 차량은 사막 초입에 도착했다. 버스가 서 있는, 50m 너비의 중간지대를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는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가 이어지지만 오른쪽으로는 사막이 펼쳐진다는 것이 꽤나 신비로웠다.  


투어 참여인원은 22명이어서 인원수에 따라 4~5명씩 5개 그룹으로 나뉘었고, 각자 배정 된 지프차에 올라타는 것이 본격적인 사막 투어의 서막이었다. 차량 내부는 '사막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좌석 시트에 스펀지가 삭아있지만 않다면 다행인 수준이었지만, 일부러 없는 길을 만들며 달리는 자동차에 올라타 있자니 깊은 모래향을 담고 있는 적당히 기분 좋은 바람 덕분에 큰 희열이 느껴졌다. 


사막 입구에서 5분 남짓 달렸을까. 판랑사막의 중심부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하자 어정쩡하게 서있는 관광객들 사이를 현지 가이드가 빠르게 지나다니며 얼른 사진을 찍으라고 말하면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사막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실어 날랐던 샛노란 개나리빛의 자동차는 위로는 하늘이오, 아래로는 베이지색 투성인 사막에서의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쓰일 거대한 오브제였다. 함께 차를 타고 온 다른 여행객들 앞에서 나의 모델력을 뽐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어색했지만, 결국 여행 후 남는 것은 사진이며, 그 사진 몇 장을 위해 4시간을 달려왔음을 잊지 않던 우리는 최대한 용기를 내어 차량 본닛 위에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보아도 결과물은 어정쩡했고, 분명 혜수는 '잘 나오고 있다.'라고 말을 해주었지만, 실제로 확인하면 또 결과물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참 모델들이 대단하다니까.'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면서도 인생샷 건지기에 심취했던 나는 판랑사막을 눈에 담기보다는, 사진 속 내 모습을 눈에 담는 것에 혈안이 되고 말았다. 결국 수십 번의 셔터를 누른 후 '안 될 것은 안 되는 것이다.'라는 삶의 진리에 도달하고 나서야,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해변가의 모래사장과는 다른, 건조하지만 밀도가 높으며 부드러운 모래와 그 모래들이 한참 동안 쌓여 산을 이룬 언덕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함께 구경 온 한국인만 보일 뿐, 건물이나 마을, 산조차 보이지 않는 沙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에는 작은 수풀이 있어서 내가 기대했던, 마치 사하라사막과도 같은 거대한 사막은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사막 비슷한 것은 본 적이 없던 나에게 판랑사막은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한 느낌을 주었다. 밀도 높은 모래는 꽤 푹신했는데, 적당한 온기까지 머금고 있어서 어느새 우리는 그 베이지색 양탄자 위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니까 여기가 사막이라는 거지? 신기하네. 우리나라랑은 확실히 뭔가 다르네."


크지는 않았지만, 어디 크고 넓은 것 만이 사막이랴. 나는 보여지고 있는, 사하라사막의 미니어처와도 같은 그곳을 두 눈에 담으며, 또 그새 에너지가 회복되어 카메라 속에 혜수의 모습을 담아댔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혜수는 올 여름 휴가로 열흘 간 몽골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그 일정 중 고비사막 관광이 포함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판랑 '사막'은, 나에게는 처음인 새로운 볼거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나트랑에서 사막은 처음이다.'라는 말을 '사막이 처음이다.'라고 받아들인 나는 그녀에게 이상하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나를 카메라 속에 담아주는 그녀의 뿌듯한 표정 앞에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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