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이었나, '호국영웅을 위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전교에서 몇 명 안 되는 학생으로 뽑히자,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주시는 상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 글쓰기에 자신 있어."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특이한 글솜씨를 발휘했는데, 바로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준 것이었다.
"내가 편지 불러주면 네가 다시 좀 써줘. 나중에 몽쉘 사줄게!"
한 개에 500원 정도 하던 몽쉘은 그 시절 꽤 고급 간식이었기에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재미였다. 하지만 내 글로 누군가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것을 보자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이건 대필이 아니야. 나는 사랑의 큐피드가 되는 거야.' 남의 사랑을 연결해 주며 괜한 뿌듯함을 느끼던 십 대였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리고 누군가를 웃게 하는 힘.
대학교에 가서는 나의 글솜씨 기술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빛을 발했으니, 바로 '문장 늘리기' 신공이었다. '에리피 프롬'의 책을 읽고 A4 두 장 짜리 리포트를 작성하라고요?식은 죽 먹기였다. 두 장이 아니라 다섯 장으로도 늘릴 수 있었던 나는 으레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한 줄을 열 줄로도 만들 수 있어."
그 시절, 어렴풋이 생각했다. 언젠가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내고 싶다고.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 중 하나,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작가의 삶을 꿈꾸던 자칭 '글 선수'는 긴 기다림 끝에, 야근에 찌든 삼십대로 성장했다.
"이게 내가 꿈꾸던 삶일까?"
먹고살기 위해 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던 어느 날, 퇴사를 부르짖으며 눌러 담은 브런치 첫 글을 발행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 되기'를 신청했다.
며칠 후 팀장님께 퇴사 소식을 알리던 순간, 우연히 본 휴대폰 알림 속 한 줄.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한 줄기 동아줄이 하늘에서 내려온 느낌이랄까? 이제는 내가 원하던 삶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삶! 모두가 꿈꾸는 삶 아닌가! 그런 모습을 기대했다.
프리랜서의 삶이란, 확실히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자유와 맞바꾼 것은 고정수입. 오늘을 쉬면 당장 수익이 줄어드는 이 세계에서, 온종일 브런치만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 수익이 나는 것들이 눈에 짓밟히자, 글쓰기가 점점 부담이 되었다. 그렇게, 퇴사를 다짐하던 순간 나를 찬란하게 만들던 '작가'라는 단어는, 결국 닿을 수 없는 길처럼 느껴졌고, 그러자 글쓰기를 향한 나의 온기도 사라졌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 당장의 수익을 좇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날, 문득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내게 남은 것은 뭘까?"
퇴사를 다짐하던 날, 나답게 살아보고자 했다.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것을 꾸준히 실행에 옮기면서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진솔한 '나'로 살아보고자 했다. 돈과 명예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이 길'이었건만, 지금은?
눈앞의 작은 금화를 얻겠다고 원하던 방향을 포기한 현실에 젖은 내가 보였다. 그때 다시 깨달았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풀코스 마라톤이라는 것. 나는 출발선에서 질주하느라 금세 지쳐버린 초보 러너였다. 그러니까 다시 천천히, 완주할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러자 다시 마음이 다 잡혔다.
일단 글을 계속 써야 한다. 왜냐고? 그게 궁극적으로 원하는 방향이니까.
그렇게 몇 달의 방황 끝에 브런치로 다시 돌아왔다.
브런치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거창하지 않다. 단지, 좋아하는 일을 통해 내 인생을 빼곡히 채우는 것. 큐피드 역할을 자처하던 대필 작가처럼,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는 것.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내 안에서 글쓰기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브런치로 좀, 나답게 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