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 <너부터 말해 봐>
윤제림
박물관 구경을 하고 나오는 길에
함께 간 친구한테 물었어요
“너 여기서 마음에 드는 물건
딱 하나만 딱 하나만
그냥 가져가라 그러면
뭐 가질래?”
친구는 둘째 손가락을 펴 보이며
“딱 하나? 딱 하나?…
…뭘 가질까
뭘 달랠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디가
“기다려! 한 번 더 보고 와서 말해 줄게” 하고는
석기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뛰어서 한 바퀴
다시 돌아 나왔는데요,
아직도 답을 못 하고
나만 졸라 대고 있어요
“너부터 말해 봐
너부터”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문학동네 2018)
윤제림의 첫번째 동시집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의 매력적인 시들은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그가 ‘받아 적은’ 말들입니다. <강을 건너며 다리한테 들은 말> <2월이면> <내년에 가뭄이 들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언제 커서>와 같은 시편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에는 우화시들이나 사연과 유래를 담은 인상적인 동시도 있습니다. <누가 더 섭섭했을까> <피아노 2> <섬> <심청이는 바보가 아니었어> <나팔꽃은 나팔을 불지 않는다>와 같은 작품들처럼 시간과 사연이 접혀 있는 이야기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한편 윤제림 특유의 농담이 베어 있는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 <한 살 차이> <별명> 같은 시들은 보는 이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따라서 대상을 대하는 깊이가 달라짐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윤제림의 이른바 ‘생활 동시’라 할 수 있는 시편들, <아침 배달> <운동회날> <내가 만든 어른들> <괜히 솔직히 말했어> <너부터 말해 봐> <슬픈 날>과 같은 시들은 동시가 어떻게 말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담을 수 있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만듭니다. <너부터 말해 봐>는 오래 머물게 하는 시입니다. “너 여기서 마음에 드는 물건/ 딱 하나만 딱 하나만/ 그냥 가져가라 그러면/ 뭐 가질래?”라는 나의 질문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석기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뛰어서 한 바퀴 다시 돌고 돌아와서도 진지하게 고민하다 결국 “너부터 말해 봐/ 너부터”라고 조르는 친구의 모습은 동심의 천진성이 얼마나 무용한 것에 진지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면서도 욕망에 충실한 모습은 약졸 약눌의 모습을, 시가 먼 데 있지 않음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