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시작이 어딘지 알아내는 순간이다
90년대 미국 로맨스 영화 속 수많은 주인공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던 역접 접속사 but.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한 짓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너 볼 때마다 짜증 나는 거 아니? 그런데 말이야……’
사랑 영화에서는 뒤에 이어질 말을 들어볼 가치가 있다. 무수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고백인지, 혹은 당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이어질 수 없는 사실 때문에 떠나야 한다는 이별의 말인지 들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류 심사 결과나 면접 결과를 알리는 메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귀하의 소중한 발걸음 감사합니다. 하지만, …….’
'하지만' '그러나' '아쉽게도' 혹은 '안타깝게도'가 보이는 순간 뒷말은 읽어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뒤에 어떤 말이 이어질지 읽지 않아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숱한 메일을 받았다. 아니, 받고 있다. 뒷말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으니 생략하고 바로 휴지통으로 이동시킨다. 첫 취업 준비 시절, 거짓말 조금 보태 100번 정도 거절을 당하고 나니 면역력이란 것이 생겨 이런 메일에 상처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랑 타령에서 이 역접 접속사가 좌지우지하는 건 내 마음 하나다. 취업으로 상황을 바꿔 생각하면 마음 말고도 많은 것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이를테면 통장 잔고나 자격지심 같은 것들 말이다. 여러 번 거절당한 뒤 마음은 딱지가 질대로 져 아프지 않지만 먹고사는 일에 관해서는 면역력 따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 구실을 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천천히 쉬어가며 내가 정말로 행복해지기 위한 길을 가는 것은 환상에 젖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대신 택한 방법은 현실과의 타협이다. 타협. 이게 내 남은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 첫 단추를 채우던 태도였다. 등 떠밀리듯 채운 첫 단추가 제자리를 찾을 리 만무했다.
나는 뼛속까지 문과 기질이 깊게 스며 밴 사람으로, 첫 취업을 한다면 영화사 홍보부 직원이나 광고 회사 기획자로 일하게 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상상했었다. 오피스룩을 낭창낭창하게 차려 입고 한 손에는 미팅 자료,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회의실로 향하는, 아니면 외근을 나가 광고가 게재될 스팟을 둘러보고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는 그런 모습을 꿈꿔왔었다.
그러나 나의 첫 직장은 창의력이나 개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항 운항 관리 부서가 되었다. 그 안에서도 나는 제일 낮은 직급인 파견 회사 소속 말단 에이전트였다. 즉 시급 1,150엔 (일본 교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약 1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받는 계약직 사원이 내가 택한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회사에서 나눠주는 유니폼과 폐기물 냄새가 나는 안전화가 내 작업복이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무전기, 다른 한 손에는 이륙 전 승인받을 서류를 바리바리 싸 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게이트로 향했다. 광고가 게재될 스팟 대신, 항공기가 주차된 SPOT으로 달려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햇빛이 작열하나 이착륙을 책임져왔다. 뿌듯함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매일 끓어 올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9개월 만에 사표를 냈고, 4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창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글을 쓰게 되었다. 계획했던 것도, 누가 하라고 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글을 쓰겠다고 작가 노트를 들고 다니며 허섭한 생각을 끄적이고, 그걸 다시 워드에 옮겨 적었다. 세상 구석구석에 내 문장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글을 써왔다.
잘못 채운 첫 단추를 풀고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현실과 타협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첫 번째 고비는 텅 빈 잔고였다. 잠시 글 쓰는 걸 멈추고 이곳저곳 비교할 겨를도 없이 작은 광고 대행사의 기획자 겸 카피라이터로 들어갔다. 긍정 회로를 돌려 대학 시절 꿈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글에 대한 욕망과 척박한 워라밸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얼마 못 가 퇴사를 했고 통장에는 18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딱 내 월급 정도였다. 첫 퇴사 후 통장 잔고의 2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돈 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더 다니다가는 그 돈 마저 병원비로 빠져나갈 것 같았다. 카피라이터로 전향해 재취업을 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라는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또다시 타협을 해 그럭저럭 먹고살고 있으나 취업에 성공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매일 나를 괴롭힌다. ‘여자 신입 나이 마지노선 = 스물일곱’으로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진 대한민국 취업 시장에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내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두려워 가끔 숨이 턱턱 막힌다.
숨이 턱턱 막히는 건 첫 단추가 내 목을 조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T. S. 엘리엇은 ‘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시작이 어딘지 알아내는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즉,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발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 길고 긴 불안의 끝은 실패를 딛고 일어나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우는 그 순간일 것이다. 어긋나 버린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 중 수많은 변수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어쩌면 글 쓰는 것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코로나 사태가 더 심각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로 한다. 그게 탈락 메일의 뒷말을 읽지 않는 것만큼 내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만약에 말이야……’라는 이 허무한 상상이 ‘하지만’ 보다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거리를 걷는 것만큼 창피하다. 하지만 첫 단추를 바로 채우기 위해서는 내가 저지른 실수를 하나하나 돌아봐야 한다. 단추를 다 풀어야만 첫 단추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시작점을 바로잡는 순간 나의 방황도 끝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