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마이크 니콜스, 2004)
To. 타이밍과 타이밍 사이에서 헤엄치는 이들에게
최근 누군가 제게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하는 것도,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맺는 관계도, 그 밖의 만남과 이별 모두 타이밍이 정해주는 것이라고요. 지금 당신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것들도 어쩌면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당신 옆을 지키고 있는 걸지 모릅니다. 냉정해지자면 꼭 '그 사람' '그 물건' '그 장소'이어야 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 시간의 제약이 다 할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간의 총량이 다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흥미를 잃고 낯선 세계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직장이든 사랑이든 집이든 언제나 새로운 것이 짜릿한 법입니다.
타이밍은 작은 점과 점이 모여 만들어진 것으로, 방심하는 순간 툭치면 재가 되어 날아가버립니다. 주워 담으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갈 만큼 작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이어 붙여도 이전의 견고한 모습은 사라지고 또다시 스러질 것 같은 연약한 모습을 하고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영화 <클로저> (마이크 니콜스, 2004)
오늘은 다가오는 타이밍과 지나간 타이밍 사이에 빠져 헤엄치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영화 <클로저>는 가까워지다 못해 끝에 다다른 인연을 뉴욕을 배경으로 현실적이면서 먹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뉴욕이란 도시에서 신선하고 선명한 색감을 제외한 탁하고 옅은 빛깔로만 펼쳐지는 장면에 우리는 좀 더 현실적으로 인연이 끝에 다다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연한 타이밍으로 '댄'과 '앨리스'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첫 만남을 갖습니다. 몇 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스파크가 튀는 만남입니다. 직업도 성장 배경도 나이도 다르지만 두 사람은 그 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주고받았던 눈빛을 운명의 타이밍이라 여기고 사랑을 이어나갑니다. 댄은 접촉 사고를 당한 앨리스를 부축해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그 인연을 시작으로 연인으로 발전해 서로의 뮤즈가 되어줍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말도 안 되게 우연적입니다. 낯선 사람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과정 모두 영화처럼 아름다웠으면 좋았을 텐데, 가까움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뎌지게 하고 끝에 다다르게 만듭니다. 그래서 댄도 앨리스와 만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안나'라는 새로운 상대에게 이끌렸던 걸지도 모릅니다. 안나 역시 댄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래리'와 결혼까지 하며 타이밍과 타이밍 사이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너를 사랑하지 않지만 너의 사랑이 필요해
댄과 안나 모두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서로의 짝에게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숨깁니다. 하지만 짜릿함이 지나간 타이밍 앞에서 거짓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일보다 더 허탈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니까 더 이상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난 더 행복해지고 싶어' '난 이기적이야' '사랑해서 더는 속일 수 없었어'라는 변명을 늘여 놓으며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 곁으로 떠나갑니다.
한편으로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이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이는 모순적인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댄도 앨리스가 자신과 헤어져 있던 사이 래리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진실을 알게 되면 상처 받게 될 걸 알면서도 앨리스의 입을 통해 진실을 듣고자 합니다. 마찬가지로 래리도 앨리스와 관계를 가졌으면서도 안나가 댄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유치한 질문을 해가며 둘의 관계가 끝났음을 확실하게 확인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네 사람이 상대의 모순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으로 서로를 향해 가까워지던 (closer) 마음은 진정한 종결(closure)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시 사랑에 빠지는 모순
한 번 접은 마음이지만 지나간 상대를 떠올리면 슬픔과 분노가 섞인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들으면 미치고 펄쩍 뛸 걸 알면서도 우리는 사실을 듣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사랑에 있어서 모순 투성이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사랑에 빠지는 모순을 범합니다. 앨리스는 사랑이란 운명이라기보다는 '순간의 선택'이자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질러가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배운 것, 사랑으로 받은 상처 모두 기억에서 지웠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사랑하는 법은 무의식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모순을 저지르고 맙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낯선 이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고 가까워지겠죠.
From. 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