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인생 intro
어릴 적부터 돈 안되고 사람 많이 뽑지도 않는 직업을 동경해왔습니다. 작업실에 틀어 박혀 글만 쓰는 작가가 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고 월급은 못 받아도 관객들의 박수갈채로 밥 먹고 사는 무대 연출가가 되는 것도 썩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정 직업군에 대한 비하 의도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10대 때 생각이 그랬다는 겁니다.) 저는 집 욕심도, 차 욕심도, 명품 욕심도, 효도 욕심도 없으니까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월 180 정도만 받으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필이면 직업 가치관이 생성되던 때 빠져 있던 드라마가 노희경 작가님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 그런가 봅니다. 송혜교 언니가 드라마국 PD로 나와서 자기 작품 할 때는 고집도 부리고 선배들 앞에서 직언도 서슴없이 하고 잘생긴 현빈이랑 꽁냥 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주준영처럼 사는 게 제 판타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정장 차려 입고 점잔 떨며 ‘네네’ 거리는 것보다는 복장 좀 후리 하고 날 것 그대로인 언어가 날아다니더라도 제 성격 제대로 뽐낼 수 있는 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희망 업계는 항상 예술 쪽이었습니다.
선생님도 가족도 친구들도 이런 저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스펙이 맘에 걸렸나 봅니다. 중학생 때 전교권에서 놀다가 외고에 떡하니 붙고, 일본에 있는 4년제 대학도 떡하니 붙어서 성적 장학금 받고 다닐 정도면 네임 밸류 있고 초봉 높은 곳에 지원할 줄 알았나 봅니다. 하지만 그런데 들어가기도 힘들뿐더러 들어가 봤자 역마살 잔뜩 낀 프로 이직러인 제가 오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광고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부모님은 공무원 준비 언제 할 거냐고, 너 성격엔 고분고분 일하고 워라밸 챙겨 먹는 게 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딸이 밖에서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를 못 보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고1 때 수학 과외 선생님은 제 꿈을 듣더니 정색을 하고는 ‘그런 생각으로 공부하면 나중에 패배감에 휩싸일 거다’라며 자존심을 박박 갉아먹는 소리를 하셔서 그 날 이후 그만 오시라고 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공연 쪽에서 일하는 사촌 오빠한테 나도 공연 연출해보고 싶다니까 ‘니가 부조리함과 헝그리함을 버틸 수 있겠냐’는 완곡한 부정에 빈정이 상해 술만 마셨습니다. 그 오빠도 수없이 퇴사하더니 이제는 일반 기업에 잘 다니고 있다고 하네요. 고3 때 진로조사표 1 지망에 ‘연예기획사 홍보팀’이라고 적어 낸 걸 보고 진지하게 인생 상담을 해주던 친구는 웃기게도 연예기획사 홍보팀에서 일하다가 몇 개월 만에 때려치웠습니다.
사람 일은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첫 취업 준비 무대는 일본이었는데 1명 뽑는 자리에 외국인 여자 문과생이 엉덩이 붙일 곳은 없었습니다. 영화, 엔터테인먼트, 공연 업계 모두 제 무궁한 앞날만 기원해주고는 일자리를 주질 않아 살이 쫙쫙 빠질 정도로 우울했습니다. 돈은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들어간 곳이 간사이 공항 지상직 운항 관리 부서였습니다. 월급이 딱 180만 원인 데다가 기숙사도 주고 유니폼도 준답니다! 꿈꿔왔던 직장 라이프와는 딴 판에다 월급도 아닌 시급으로 일하는 말단 파견 직원 신세가 되었지만 180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굽실거렸습니다. (첫 달은 맨날 일찍 퇴근시켜서 85만 원 정도밖에 못 받았지만요...) 여기서부터가 제 시급 인생의 시작입니다.
당시 최저임금이 8천 얼마 하던 걸 감안하면 1,150엔은 나름 높은 시급이었습니다. 시간당 만 이천 원 남짓 하는 돈을 받으며 군기 빡쎈 여초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매운맛으로 배운 덕분에 초년생 때를 금방 벗을 수도 있었고요. 힘들긴 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광고 업계 진출과 글을 쓰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1년간 한량처럼 놀다가 어쩌다 디지털 광고 대행사에 붙어버렸습니다. 드디어 월급쟁이가 되었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시급 받던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맨날 10시까지 남으라고 하면서 최저임금보다 못한 돈 줘서 꼴 보기 싫어서 퇴사했습니다.
바로 이직을 하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버렸다네요? 그래서 블로그 포스팅 알바를 뛰며 시급 인생보다도 못한 건당, 자(字) 당 인생을 잠시 살았습니다. 건당 인생은 시급 인생보다도 끔찍해서 일주일에 10만 원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글로 돈을 벌어 입에 풀칠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버텨냈죠. 지금은 다시 광고 대행사에 다니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통장에 찍히는 돈이 시급 인생 수준입니다. 그래도 남들이 ‘무슨 일 하세요?’ 물으면 ‘광고 카피 쓰구요, 취미로 글도 써요.’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거에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습니다.
꿈이라는 거, 멀게만 느껴졌는데 정신 차리니 20대 중반이 되어 초등학생 때 보던 드라마 속 주인공 모습에 닮아 가고 있습니다. 무조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건 그만큼 하고 싶은 일에 종사하기가 어렵다는 역설입니다. 그래서 100번 넘는 불합격 통보와 1년 간의 방황 끝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삶에 만족하며 매일 출근을 해냅니다. 언젠가는 입맛에 딱 맞는 직장을 만날 날이 오겠죠.
배고픈 직업에 대한 갈망이 끊일 줄을 몰라 2020년 9월 오늘도 시급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시급 인생이라도 직급도 달고 싶고 사치도 부리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저축도 하고 싶고 효도도 하고 싶습니다. 시급 인생으로 읽고 보고 느낀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