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시간 1분 1초만큼 벌어갑니다

시급 인생 1화-시급이란

by 가람

2020 인간의 생존권, 최저시급


・2020년 9월 기준 최저 시급 8,590원. 월급으로 치면 18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정도.

・2020년 광고 업계 신입사원 초봉 약 2,200만 원. 세금 다 떼고 이것저것 받으면 180만 원 조금 웃도는 정도.


주 5일 8시간 일한다고 쳤을 때, 시급 받고 일하던 반백수일 때나 4대 보험 혜택 누리면서 월급 받아먹는 월급쟁이가 된 지금이나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고만고만한 것 같습니다. 조금 벌든 많이 벌든 지출의 50% 정도가 식비로 나가는 건 마찬가지이고요, 돈벌이가 늘어나면 물가도 함께 올라 커피값, 책값, 옷값은 항상 아까워 죽겠습니다.


시급 인생을 살다 보면 비싸고 싸고의 기준은 내 시급이 되어 버립니다. 한 시간 일하고 만원을 받는데 10분이면 원샷해버리는 아이스 카페 라떼가 4천 원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이거라도 안 마시면 인생이 너무 건조하고 퍽퍽해질 것 같아서 털어 마시고 일터로 향합니다.


간사이 공항 커피. 맥 카페 맛있습니다. 월급 타면 가끔 스타벅스도 가곤 했습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시급 인생


시급 인생은 정직합니다. 딱 일한 시간만큼만 벌어 가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효율에 민감해지곤 합니다. 많이 일하면 많이 벌어갈 수 있다는 뜻인데, 제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노동의 한계치라는 게 있어서 떼돈 버는 게 쉽지는 않더군요. 한두 시간 더 일해봤자 일이 만원 더 들어오는 건데, 그냥 정해진 만큼만 일하기로 합니다.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장 두근거리는 일은 다음 달 시프트를 받아서 예상 월급을 계산해보는 거였습니다. 24시간 내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인지라 야간 수당이 붙는 새벽 근무도 있었고, 오버 타임 수당이 붙는 롱 (long; 10시간~13시간짜리 시프트) 근무도 있었지만 신입일 때는 배정이 잘 안 되더라구요. 대신 수당 안 붙는 시프트나 5시간 동안 설명만 듣다 집에 가는 트레이닝만 넣어 줘서 15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지진 때문에 출근이 늦어져 3만 원 정도 날린 날


지진 등으로 출근이 늦어지거나 비행기가 캔슬되어 인력이 필요 없는 날이면 하루 일당 날리는 겁니다. 천재지변으로 일을 못할 상황에 놓인 건데 무급으로 쉬라고 할 때면 내심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그 날 날린 돈이 아까워 뭘 사 먹지도 못했습니다.


전기세, 가스비, 수도세, 핸드폰 요금, 기타 수수료 다 내고 나면 90만 원 정도 남습니다. 거기서 교통비 빼고 식비 및 품위 유지비 빼면 2~30만 원 정도 남고요. 그때 당시 솔로였기에 데이트 비용은 안 나가서 다행입니다. 대신 매일 원하지도 않는 직장에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돈만 받으며 사는 인생이 적적해 술만 허벌나게 마셨습니다. 변명은 아니고, 그래서 사회 초년생 때는 적금이니 저축이니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시급 500원 올라가고 월급 맥스 찍은 달. 그래 봤자 170만 원 정도네요.


한 달에 한 번, 파견 회사 사람이 공항으로 와 면담 비슷한 걸 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비싼 음료 마시면서 불평 늘어놓는 시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같은 파견 회사 소속인 한국인 언니들이 아무리 불만을 늘어놔도 후지와라 아저씨는 일단 알겠다고만 하고 들어주질 않았습니다. 딱 한 번, 시급 50엔 (500원) 올려준 거 빼고는요.


원래 티켓팅하고 승객 안내하는 여객 부서 (PAX)에 지원했지만 공항 측은 운항 관리 부서 (OPS)로 들어오기를 권했습니다. 운항 관리 부서가 다른 부서 보다 일찍 나와 늦게 퇴근하고, 항공기 이착륙에 필요한 서류 준비에서 항공사, 공항, 부서, 기장 커뮤니케이션 담당, 항공기 안전 제1 책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순진한 전 알겠다고 대답하고 운항 관리 요원이 된 거였습니다.


여객부 언니들 퇴근할 때 혼자 무전기 들고 앉아 있고, 종아리 터지게 게이트 왔다 갔다 하고, 짐 싣는 아저씨들 무전 안 들으면 내려가서 소리치고, 숫자 하나 틀렸다고 선배들한테 인격 모독당할 만큼 까이고… 그런데 돈은 다른 하청 직원이랑 똑같이 받고… 억울해서 후지와라 아저씨한테 뭐라 그랬더니 시급 50엔 (500원) 올려주겠답니다. 그게 어디냐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였는데, 그냥 힘들어서 때려치겠다고 해야 했던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갑을병정 건당 인생


공항에서 일하던 때 보다 돈을 더 못 벌 수 있을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해봤는데, 코로나 때문에 정말 거지 같은 4개월을 보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맨날 수당도 없이 야근을 시켜서 노동 대비 통장 만족도가 매우 낮았습니다. 공항이었다면 야근할 때마다 기록에 남겨서 추가 수당이 붙었겠지만 스타트업 월급쟁이에게 그런 복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금 부은 돈을 믿고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 생각하고 퇴사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애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잘 뽑아주질 않아 백수 기간은 예상 1개월에서 4개월로 늘어났습니다. 핸드폰 요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적금을 깨는 건 최후의 수단입니다. 그래서 블로그 마케팅에 필요한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 알바를 시작했는데, 한 글자 당 꼴랑 2.5원을 받으며 천문동 효능이니, 하늘꿈 해몽이니, 아파트 바닥 청소니 이런 글 쓰고 있자니 현타가 매일매일 찾아와 정신줄을 붙잡고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구인 구직 글에는 많이 벌어가면 일주일에 50만 원도 벌어갈 수 있다는 듯이 써 놓더니, 초보자라면서 일도 많이 안 주고 가격도 은근슬쩍 내려 불렀지만 내 코가 석자라 늬예늬예하면서 글을 써다 바쳤습니다.


이미지 출처: EBS 자이언트 펭TV

명목상 프리랜서 작가랍시고 고용된 거지만, 실상은 대대대행, 하청의 하청의 하청으로 매일 주어지는 주제에 관해 글을 쓰는 노가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 시작하면 평균 2000자 2건 정도 작업을 하는데, 아무리 빨리 쓴다고 해도 한 건 당 한두 시간은 걸립니다. 시급으로 계산해 보면 5000원 정도 되는 일이네요. 하지만 그 돈이라도 벌지 않으면 당장 마스크 살 돈도 없었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에 빙의해 글을 썼습니다. <태엽 감는 새> 속 주인공 노보루가 보람 없이 가발 회사에서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토니 타키타니> 속 히사코가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여자의 옷을 입어야 했던 것처럼, 건전 업소임을 강조하는 전통 타이 마사지 가게나 돈방석에 앉게 해 주겠다는 부업 플랫폼의 홍보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쉬고 싶지만 효율을 더 올리기 위해 꾸역꾸역 형용사와 물결을 갖다 붙여서 정해진 글자 수를 채워 나갔습니다. 일주일에 5만 원, 많으면 10만 원이 들어왔는데 덕분에 가끔 읽고 싶은 책도 사고 맛있는 거 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옛날 시급 인생 시절 생각하면 오후에 느지막하게 출근하거나 20분 정도 하늘 보면서 쉰다고 해서 돈이 깎이는 게 아닌 지금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을 하늘 보면서 머리 식히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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