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월급에 빨대를 꽂아라

시급 인생 2화-세금이란

by 가람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돈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돈이 세금이랑 현금 인출 수수료입니다. 주거래 은행 ATM기는 잠실역까지 나가야만 있어 가끔 현금 뽑을 일이 있으면 900원에서 1200원쯤 눈물을 머금고 보내주어야 합니다.


월급 명세서 보는 날도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노동법에 위배되지 않을 만큼만 주면서 무슨 세금을 그렇게나 많이 떼어 갑니까? 대충 셈해보니까 세금으로 나가는 돈이 월급의 11%네요. 세금이란 도대체 뭐길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우리네 월급에 빨대를 꽂고 있는 걸까요?


롸?






의무이자 방패, 4대 보험


[4대 보험]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에서 정의한 사회 보험.
국민 연금, 건강 보험, 고용 보험, 산재 보험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금이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내야 할 의무가 있는 돈입니다. 내고 싶지 않지만 떼먹을 방법도 모르겠고, 진짜 떼먹으면 경찰이 이놈 할 거고, 코로나 터지고 호기롭게 퇴사해 손가락 빨고 있을 때 경기도청년기본소득 100만 원 덕분에 조금 살판났던 거 생각하면 그냥 내 돈이 아니렷다 여기며 긍정 회로 돌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잡았다 요 탈세범


세금을 납부한다는 것은 우리가 성실한 근로자라는 증거가 되어줍니다. 4대 보험으로 몇십만 원씩 나가는 거 보면서 화딱지가 날 때도 있지만, 그거 아무나 가입 못합니다. 또 가입 안 되어 있으면 국민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들어가게 돼서 엄청나게 비싸집니다. 지역가입자로 들어가 있다는 건 백수라는 뜻인데 회사 다닐 때 보다 건강보험료가 올라갑니다. 웃기지만 그렇답니다.


한 가지 억울한 건 병원에서 맞는 수액은 건강보험 처리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회사 다니면서 병원 간 건 야근으로 망가진 몸 챙기느라 수액 맞으러 간 거밖에 없는데 보험 처리가 안 된답니다. 억울해 죽겠지만 아파 죽겠는 게 더 커서 보험 미처리 서약서에 싸인하고 빨리 주사나 놔 달라고 했습니다.


10만 원짜리 휴식


4대 보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업장/회사에 속해 노동을 제공했다는 아주 확실하고도 심플한 증거가 되어주죠. 그러므로 피고용자들이 자기 몸을 지켜야 할 때가 왔을 때 아주 큰 도움이 되곤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4대 보험 이런 거 가입 안 해도 되고, 세금 안 내도 되고, 월급 현금으로 주겠다고 유혹하는 곳 보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세요. 나중에 부당한 일 당해도 내 몸 내가 지킬 방패가 없어집니다.






소속 없어도 세금은 나갑니다

정직원이 아닌 파견이나 아르바이트로 일하더라도 세금은 꼬박꼬박 나가기 마련입니다. 프리랜서로 일해도 세금은 나갑니다. 어디 소속된 게 아니기 때문에 4대 보험비는 안 나가더라도 원천징수를 당하게 됩니다. 보통 일을 준 업체에서 돈을 줄 때 원천징수 3.3%를 뺀 금액을 줍니다. 블로그 마케팅 원고 작성 알바를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원한 뒤 대뜸 테스트 원고를 요구하더니 읽어보고는 흡족해하며 당장 일하자 그러더군요. 프리랜서라도 계약서 안 쓰냐고 물어보니까 열이면 열, 자기네는 그런 거 없고 나중에 세금 신고해야 되니까 주민등록번호랑 신분증 사본이나 내놓으랍니다. 수상하지만 당장 이번 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정기 결제할 돈도 없어서 원고와 함께 보내 줍니다. 다행히 한 번도 돈을 떼먹은 업체는 없었지만 계약서도 안 써주는 업체한테 개인정보 다 넘기자니 찝찝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원고료가 입금됐는데 들어오는 돈은 용돈보다 적으면서 꼬박꼬박 나가는 원천징수 3.3%를 보면서 빨리 이 생활 접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1500자 기준 한 건에 많이 줘봤자 3000원 주면서 3.3%를 떼가면 어쩌라는 겁니까. 공백 없이 4500자를 써도 만 원을 못 벌어 갑니다. 밖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책 한 권 사면 2만 원이 그냥 나가는데, 맨날 코로나 핑계 대면서 집에만 처박혀 노가다만 뛰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그때의 저를 살려준 지역화폐한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렇게 세금도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용돈벌이, 비과세 항목


[비과세 항목]
식대, 교통비 등 월급명세서에서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항목


대부분의 회사는 경비보고서라는 게 있어서 월급날 일주일 전쯤 영수증이랑 같이 제출하면 월급에 플러스알파 돼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보통 야근 택시비나 식대 같은 게 여기 해당되는데, 이거는 비과세라고 해서 세금을 안 떼 갑니다. 물론 내 몸 하나 갈릴 때까지 야근하며 내가 쓴 내 돈 나중에 돌려받는 거지만 통장에 찍히는 거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메신저로 오늘까지 경비보고서 제출하라는 알림이 오면 지갑에 고이 모셔 둔 영수증을 꺼냅니다. 그러고는 행여나 숫자 하나 초점 안 맞을까 애인 사진 찍어줄 때 보다 심혈을 기울여 증거 사진을 찍어줍니다. 쏠쏠한 용돈벌이 덕분에 최저임금 받으면서도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하든 안 하든, 소속이 있든 없든 세금 내느라 바쁜 우리. 야근하고 돌아가는 날이나 법카 찬스 쓰는 날에는 ‘영수증 주세요’라고 외치고 야무지게 모아뒀다가 다음 달 용돈으로 쓰자구요 :-)


월급날이면 먹던 12,000 원짜리 연어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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