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 <귀를 기울이면> (콘도 요시후미, 1995)
원석을 다듬는 시간
아는 팀장님의 손에 이끌려 보석 가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색색깔로 진열된 매대 뒤편에 차려진 작업실 책상에는 이름 모를 원석들과 때 묻은 헝겊, 돋보기, 공구함, 연필 등이 놓여있었습니다. 마치 영화 <토이 스토리> 속 우디가 태어났을 법한 공간이었죠. 혹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유바바의 집무실 책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조그만 자기만의 공간에서 원석은 수시간, 수십 시간 다듬어져 매장 판매대 위에 올랐을 겁니다. 각고의 노력의 결과가 새끼손가락보다 작다고 생각하면 시시하지만 저는 작더라도 반짝이는 보석 안에 담긴 누군가의 노력과 마음과 이야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순간마다 제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습니다. 비록 한 줄짜리 카피를 쓰더라도 그 한 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말이죠.
영화 <귀를 기울이면> (콘도 요시후미, 1995)은 두 주인공 ‘시즈쿠’와 ‘세이지’가 자기 안의 원석을 찾아 갈고닦는 청춘 로맨스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각자에게는 글짓기와 바이올린 만들기라는 아직은 거칠고 서툰 재능이 있습니다. 아마 두 재능이 빛을 보기까지는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입니다.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을 거고 들인 공에 비해 미미한 결과물에 좌절하는 날도,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 과연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 것 일까 싶은 고민에 빠지는 날도 있을 겁니다.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마음처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기적은 없습니다. 잔인하게도 어느 정도 적당한 마음만으론 이룰 수 없는 게 꿈이기 때문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
하고 싶은 노력만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하기 싫은 노력 열 가지를 하고 나서야 원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혹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조차 몰라 불안한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조바심 낼 것 없이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찾아 나간다면 훗날 그 노력은 큰 도움이 되어줄 겁니다. 어제보다 오늘 하나라도 더 나아진 점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 시간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매일 3시간씩 투자해도 자그마치 10년이 지나야 1만 시간을 채울 수 있죠. 짧은 시간 내에 큰 결과만 바란다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도 금세 나가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시즈쿠와 세이지가 가진 열정 정도로 여유 부리지 않되 하루하로 천천히 노력하다 보면 나이테는 굵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능은 오래오래 함께 할 일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밥벌이가 가능한 작가와 바이올린 장인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두 사람이 힘든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시즈쿠의 아빠는 이렇게 말하죠. “남달리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라고. 세이지의 할아버지도 시즈쿠에게 원석을 품은 돌멩이 하나를 건네며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 안의 원석을 찾아내 오랜 시간 다듬어야 하지.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야”
저는 이 두 마디가 1만 시간을 앞서 걸어온 어른으로서 시즈쿠의 아빠와 세이지의 할아버지가 청춘에게 해주는 조언이자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
책을 읽어도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현실은 다르다는 걸 깨달은 시즈쿠. 하지만 글쓰기라는 다른 꿈을 찾아 몰두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부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읽는 사람에서, 사람들에게 두근거림을 선사하는 멋진 작가가 되었으면. 우리가 시즈쿠의 이야기를 보고 느낀 향수, 설렘, 낭만을 시즈쿠 본인도 깨달았다면 분명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어 있을 게 틀림없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보편성이라는 원석 속에서 소중함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꿈을 위해 앞뒤 재지 않고 노력한 시간과 누군가의 존재만으로 힘을 낼 수 있었던 순수함이 있었을 겁니다. 어른이 된 후 현실에 치여 잊고 있던 소중한 감정을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화 <귀를 기울이면>은 길을 잃은 순간마다 꺼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거나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보며 내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2022년 4월 2일
토요일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