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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Aug 24. 2023

바다에서 요트끼리 충돌하면 몇 대 몇?

2022 새만금컵 국제요트대회 출전기 (2)

새만금컵 첫날, 첫 번째 경기에서 '1위 같은 2위'를 한 기쁨과 흥분을 안은 채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날의 프로암 레이스에서는 총 3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요트경기는 여러 번 경기를 해서 그 순위를 합산한 후, 점수가 가장 은 팀이 이기는 룰을 채택하고 있. 보통 모든 배가 피니시를 끊고 나서 10분~30분 정도 뒤에는 다음 경기를 시작한다.


부슬비가 조금 내렸지만 오히려 시원했고, 이번에도 출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첫 번째 마크를 돌고 제네이커도 별 탈 없이 펼쳐져서 바람을 받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소리를 질렀다.


"앞에! 배! 배!"



고개를 들자 슬로우모션처럼 거대한 배가 시시각각 눈앞으로 다가왔다. 스키퍼는 급하게 틸러를 밀어 방향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소리와 함께 우리 배의 선와 상대 배의 왼쪽 측면이 충돌했다.


사고였다. 바다 위에서.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도로에서도 유독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지점이 있듯, 바다 위에서도 그런 곳이 있다. 출발 지점과 마크 주변이다.  다른 해역에서는 멀리 배가 보이면 일찌감치 피해서 코스를 잡지만 출발선과 마크 주변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이번 코스는 사고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명 '소세지 코스'였다.


왼쪽이 삼각형 코스, 오른쪽이 소세지 코스.


삼각형 코스에서는 1마크와 2마크를 모두 지난 후에 풍하로 선회를 하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오는 요트와 부딪힐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소세지 코스는 풍상 마크가 한 개이기 때문에, 마크를 돌자마자 이 마크로 돌진해 오는 다른 배들과 마주하게 된다.


마크라운딩이란 기울어진 배 위에서 달려 나가 세일을 펴면서 마크도 건드리지 말고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게다가 풍상 마크를 돌면서 네이커를 편 순간 배 앞에는 거대한 시야의 사각이 생긴다.  뒤쪽에 서 있는 스키퍼에게는 건너편에서 오는 배가 잘 안 보이므로 크루들이 계속 보면서 전방의 상황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이 첫 경기였고, 그렇게 배가 많이 있는 해역에서 세일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데다가, 제네이커를 펴고 집 세일을 내리 것에 집중하느라 잠시 앞을 못 보았고, 설상가상으로 그날은 바람이 세서 배들이 엄청 빨랐다.


갑자기 유턴을 했는데 집채만 한 천이 시야를 가렸을 때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충돌사고는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을 땐 상황이 모두 끝나 있었다. 새 배를 가지고 처음으로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를 일으키다니. 모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머릿속 역시 비슷한 상태였을 것이다.


나는 배 앞부분이 박살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진영이 앞을 살펴보더니 제네이커를 고정하는 봉, 바우스프릿만 부러졌다고 말했다. 철렁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레이스 중고, 경기 속행해야 했다. 그 상태로 어찌어찌 제네이커를 콘트롤해 풍하를 타고, 제네이커를 내린 후 시 풍상, 다시 풍상 마크를 돌 때는 제네이커 없이 집 세일로만 풍하를 타고 내려갔다. 행인지 불행인지 제네이커를 올리고 내리는 절차가 사라져서 시간을 좀 벌긴 했다. 하지만 속도가 확 떨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네이커가 없는 핸디캡을 짊어지고도 우리는 두 번째 경기에서 아슬아슬하게 2위를 했다. 세 번째 경기에서는 제네이커를 아예 쓸 수 없었기에 4위로 들어온 것이 고작이었다. 바람이 센 날은 집 세일로만 달려도 제법 속도가 나오기에 그나마 4위라도 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결국 그날 프로암 레이스에서는 종합 순위는 2위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순위와는 무관하게 항으로 돌아 우리의 표정은 침했다. 부딪힌 것 때문에 페널티를 받을까 걱정되기도 했고, 출전 첫날 배를 깨 먹다니, 앞으로 이틀이나 더, 그것도 본 경기가 남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다들 말이 없었다.


우리를 응원해주러 울진에서 온 본부장님과 이미 격포항에 와 있던 감독님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급히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더니, 얼마 뒤에 와서 이렇게 말다.


"바우스프릿 하나 빌려오기로 했으니까, 내일 대회는 그걸로 나가자."



그러더니 정말로 그날 밤 인편으로 바우스프릿이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부랴부랴 계류장으로 달려가 부러진 을 꺼내고 빌려온 것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바우스프릿 안에는 복잡하게 시트가 여러 겹 들어가 있는 데다가, 마개를 나사로 고정해두어야 해서 작업은 오래 걸렸다. 감독님, 본부장님에 선수들까지 팔 걷고 나서서 도와준 결과 경기시간 20분 전에 수리는 극적으로 완료되었다. 우리는 허겁지겁 경기수역으로 달려 나가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곧바로 레이스를 시작했다.



첫째 날은 프로암 레이스, 상금도 작고 코스도 짧은 일종의 사이드 경기였지만 둘째 날부터가 본경기였다. 출전하는 배도 많고 코스도 더 길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이었다. 전날 충돌사고의 여파로 경기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자꾸 어디서 배가 오지 않나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마크에서도 공격적으로 치고 나가기보다는 다른 배를 피해 가는 소심함이 +1 증가해 버렸고, 무엇보다 사기가 심각하게 떨어졌다. 첫 경기에서 6위를 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4위, 점점 눈앞에 보이는 배들이 많아졌다.


약간 정신을 차린 것은 세 번째 레이스쯤으로, 그때는 출발도 괜찮았고 마크에서도 실수 없이 돌았다. 우리는 다른 팀보다 풍하 콘트롤을 잘하는 편이었다. 경기 전에 풍하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고, 크루들끼리 손발이 잘 맞고 움직임이 날랬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훈련할 때처럼 잘 맞아떨어지고 실수가 없는 순간이 오자, 배는 기적처럼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2위를 탈환, 그다음엔 3위를 했다. 총 네 경기가 끝나고, 종합 4위를 한 상태로 둘째 날이 저물었다.




항으로 돌아온 뒤 배를 정리하고 있는데, 어쩐지 계류장의 공기가 처음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일단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 것 같았다. 처음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눈이 마주치면 다들 웃으며 인사를 네왔다.


감독님이 말해주길, 후아팀은 이번 대회에 단연 화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폴이 부러지고 그걸 바로 고쳐서 다시 나간 일도 그렇지만, 일단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트대회는 스포츠 경기였으므로, 중요한 것은 첫째도 성적, 둘째도 성적, 셋째도 성적이다. 레이스를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운이 좋아서 그랬다고 할 수도 없었다. 다들 우리가 경기하는 모습을 바다 위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후아팀에 여자 선수가 많은 것 확실히 눈에 띄는 지점이었다. 딩기대회는 남녀가 구분되어 있지만 킬보트 대회는 성별 구분 없이 동등하게 참여한다. 하지만 90% 이상이 남성 선수들이고, 아예 여성들로만 팀을 이루 경우가 아니라면 여성은 드물게  명 정도만 참여하는 식이었혼성팀에서 여자가 스키퍼를 맡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는 스키퍼, 집 트리머, 바우맨과 같은 키맨들이 전부 여자였다.  (감독님 왈, "나는 너희들 여자로 안 보고 그냥 선수로 본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인정사정 안 봐주고 훈련을 시키셨다...)

                                                                            




둘째 날 저녁 우리는 격포항 근처 여기저기에서 대회에 출전한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요트를 시작했는지,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팀원들은 어떻게 만났으며 훈련은 무얼 주로 했는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요트 입문은 작년 여름, 딩기는 피코로 두어 달 타봤고, 킬보트로 훈련한지는 3개월 정도 됐다고 하자 다들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와 엎치락뒤치락했던 다른 팀은 우리가 요트선수 출신이거나 아니면 체대 출신이 분명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일반인, 그것도 초짜였다니 허탈하다며 내일 최종경기에서는 반드시 우리를 이기겠노라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날 밤에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기분이 꽤나 들떠 있기도 했고, 온몸에 안 쑤시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트를 계속 잡고 버틴 탓에 손이 아파서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내일 무사히 경기를 치를 수 있을까.  사고 나면 안 되는데...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올 때 우선권을 가진 배가 뭐더라... 배 싣고 오는 데에 든 비용을 건지려면 적어도 2위는 해야 똔똔일 텐데...  잘할 수 있을까... 근데 오늘 세 번째 경기 합이  괜찮았지... 그렇게 우리 모두 분과 걱정과 근육통의 삼단콤보에 시달리며 선잠이 들었다.






* 그래서 바다위에서 충돌사고가 나면 몇대 몇인고 하니... 심각한 재산상, 인명상의 피해가 발생하거나 같은 레이스에서 순위를 다투는 경우라면 Protest(항의)를 해서 청문 절차를 거쳐 누가 우선권이 있었는지, 사전에 경고를 했는지,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 했는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지만, 우리와 부딪힌 배는 아예 클래스가 달라서 순위를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었고, 두 배 모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그 배는 다음 경기에서 다른 배와 부딪혀서 마스트가 부러져서 리타이어를 했기 때문에 결국 몇대 몇인지 청문회가 열리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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