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선을 그을래요. 지우개를 들고 싶어 지더라도
“인생을 하얀 도화지로 남겨두고 싶지는 않아요. 빼곡하게 채워진 그림 위에 다시 하얗게 색을 칠할 수 있는 있겠지만 아무런 선도 그어보지 못 한 채로 새하얀 종이로 남겨두는 건 인생에 대한 제 태도와는 먼 것 같아요. 비록 실패하고 망한 그림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간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니까요.”
오랜 시간 준비한 딥-토킹-에세이 클래스 2주 차 시간이었다. 나조차도 몰랐던 내 마음이 입술 너머로 흘러나간 것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척 알아봐 주는 지극히 사적인 관계가 아닌, 적절한 거리를 사이에 둔 채로 작가와 독자 사이 혹은 수강생과 강사 사이에서. 이럴 때면 어김없이 실감한다.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 서로를 가장 잘 읽어주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주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녹록하지 않은 삶 속에서 녹록하지 않은 표정으로, 습관처럼 마주하는 이들이 아닌 새로운 사건처럼 혹은 선물처럼 마주하게 된 사람들이 절실한 세상임으로. 그 절실함들이 모여 쉽게 비치지 못했던 진심을 토해내게 했을 거다.
닮은 구석 없이도 거울 같은 서로를 발견하던 우리가 새롭게 나누게 된 주제는 [실패와 도전].
아무리 마음을 여는 시간이라고 하여도 실패를 나누는 경험은 쉽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내가 정한 주제임에도 말문을 트는 게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위기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까.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음을 터뜨리는 솔직한 사람일까, 거울 앞에서조차 이를 악 무는 단단한 혹은 억압된 모습을 보일까.
사실은, 나는 가장 내가 궁금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일 수 있을까. 지난 실패와 도전을 돌아보며 지금의 나를 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스스로에게도 에세이 과제를 부여했다.
에세이를 작성하기에 앞서 나는 내가 해왔던 도전들을 먼저 나열해봤다. 초등학생 때 전학 온 남자애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전했던 것, 중학생 때 선생님 몰래 피어싱을 뚫어본 것 등 작은 것부터, 대학생 시절 9개의 대외활동에 문을 두드렸던 것, 학원과 과외부터 새벽 전단지 알바까지 다양한 알바를 시도했던 것과 복수전공과 자격증 시험까지.
도전을 먼저 나열하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실패하지 않았던 도전들, 누가 알아도 부끄럽지 않을 도전들만 늘여놓는 걸 알게 됐다. 다시,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하며 노트를 한 장 넘겨서 큼지막한 글씨로 "실패"라고 적었다. 그리고 하나씩 가지를 쳐가기 시작했다.
눈물 마를 날 없는 여름방학을 만들어준, 열일곱에 실패한 짝사랑. 기고만장하던 수험생 시절을 흑역사로 만들고 만 입시 좌절. 그 누구의 축하 없이 시작되고 쓸쓸히 막을 내린 첫 연애. 용서하기로 했으나 거듭 미워하고만 이름들. (나눌 수 없는 기타 등등의 실패들)
예상과 다르게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린 실패의 열매들을 바라보며 얼마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걸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경솔한 주제 선정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던 찰나, 무언가 번뜩하고 떠올랐다. 나는 실패의 열매에 새로운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1) (도전 1) 미국으로 떠나는 H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낸 고백 - 눈물 마를 날 없는 여름방학을 만들어준, 열일곱에 실패한 짝사랑 - (도전 2) 다시 한번, 특별한 친구 사이로 지내자며 다가갔던 열일곱 2학기의 나.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 가깝게 지내는 우리.
2) 기고만장하던 수험생 시절을 흑역사로 만들고 만 입시 좌절 - (도전) 거만하던 수험생 시절을 되돌아보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독학했던 재수 1년, 그 시간으로 사고방식이 달라졌던 나. 그리고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입학한 국문학과. 이후로 다신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지 않았던 나.
3) (도전 혹은 선택) 모두의 만류에도 짜릿한 이끌림으로 택한 시작 - 그 누구의 축하 없이 시작되고 쓸쓸히 막을 내린 첫 연애 - (선택) 이후로 신중하게 끊고 맺었던 연애, 가득 채워진 좋은 기억들.
4) 용서하기로 했으나 거듭 미워하고만 이름들 - (도전) 여전히 용서하기로 애쓰고 있는 중이다.
페이지 빼곡하게 그어진 선과 문장을 보며 생각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도전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실패를 했다는 건 도전했다는 것이고, 다시 한번 도전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거절받은 마음은 적어도 한 번은 꺼내보인 마음인 것이고 낙방했다는 건 다시 한번 고요한 시간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실패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재도전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나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는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하는) 성공과 달리, 적어도 한 번은 내가 했던 도전과 선택에 대해 곱씹어 볼 시간을 내어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그에 따라, 어디로든 움직일 이유가 되어주는 게 아닐까.
도전의 페이지를 채울 때와 달리, 실패로 채워진 페이지를 보고 나니 내게도 적지 않은 실패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여전히 진행 중인 도전들을 이끌어냈고 때때로 심심하지 않게 성공으로까지 이어진 지점들을 실패라고 불러야 할까, 하는 의문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이걸 나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실패가 온전히 실패라는 이름의 점으로만 남겨진다면, 그 점은 언제든 같은 크기와 온도로 삶의 한 구석을 차지하지 않을 거다. 우리는 두려움과 패배감으로 그 지점을 계속해서 피해 다닐 거고 실패의 점은 기세등등하며 점점 더 자라날 거고, 우리가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은 더 줄어들 거다.
그러나 실패를 위기의 점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인생에도 서사가 있고 그 서사 속 위기는 (문학시간에 지겹도록 배웠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그 위기라는 걸 알 때 우리는 절정을 기대할 수도 있을 거다. 나는 우리가 그 기대로 위기의 점에 계속해서 선을 그었으면 좋겠다.
그 선들은 쭉이어질 수도, 뚝 끊기거나 다시 새로운 점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면 오늘의 페이지들을 떠올려야겠다. 가지 끝에 달려 있던 탐스러운 실패의 열매,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됐을 때 다시 새롭게 이어진 가지와 새로운 도전의 잎, 아직은 작은 결실들을.
가까이서 바라보았을 때는 그저 보잘것없는 인생의 단면이라고 느껴졌지만 고작 일주일, 한 달, 그리고 해가 지나고 나니 전혀 다르게 남겨졌던 그 지점들을 기억하기로 했다. 축복의 순간들과 위태롭게 이어져서, 결국에는 내 삶 가운데 지워내고 싶은 실패, 순간들은 없음을.
“인생을 하얀 도화지로 남겨두고 싶지는 않아요. 빼곡하게 채워진 그림 위에 다시 하얗게 색을 칠할 수 있는 있겠지만 아무런 선도 그어보지 못 한 채로 새하얀 종이로 남겨두는 건 인생에 대한 제 태도와는 먼 것 같아요. 비록 실패하고 망한 그림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간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니까요.”
못생긴 점과 선들이 마침내 그려낼 세상, 단 하나의 명작을 기대하며 계속해서 펜을 쥐고 달릴 거다. 멈춤 없이.
매일 책을 쓰고 영화를 읽습니다. 언제나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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