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비슷한 조각이 있어

당신과 내가 우리가 될 수 있는 가장 따듯한 방법

by 가랑비메이커

전혀 다른 당신과

내가, 우리가 될 수 있을까



가끔 주변을 돌아보면 곁에 머문 이들이 참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제도 그제도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걸어 뺨이 뜨거워질 때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오랜 친구와 때때로 힘이 들 때면 찾곤 하는 몇 안 되는 나의 선배들. 미우나 고우나 언제나 내 곁에서 한결같은 온도로 머물러 주는 가족들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그들의 존재가 일순간 낯설고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


눈을 감고도 그려볼 수 있을 만큼 낯익고 다정한 그들이지만 분명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우리가 함께 마주하며 긴 시간을 보냈고 서로의 기쁘고 슬픈 기억들에 성실히 참여해 왔다고 하여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취향과 성향을 지녔으며 각자의 끓는점과 어는점이 다르다.


이렇게나 다른 당신들과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됐다. 나의 친구, 나의 후배 혹은 나의 연인. 나의 무엇이 되어준 당신들과 당신들의 무엇이 되어버린 나. 우리는 어째서 그저 스치지 않고서 머문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비슷한 조각이 있다면

우리의 교집합



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언제나 빼놓지 않고 <집합>이란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학생 때 수학 시간에 처음 배웠던 집합. 서로 다른 집합이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요소. 그 요소들의 집합을 나타내는 교집합.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과 내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지나치지 못하고 서로의 무엇이 되어버리고만 이유는 교집합 때문이 아닐까. 각자가 지나온 서로 다른 환경과 세월, 여전히 머물고 있는 상황이 다르다 하여도 우리가 함께 마주하며 소중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함께 지니고 있던 비슷한 조각 때문일 거다.


내가 10개의 요소로 이뤄진 사람이든 당신이 100개의 요소를 가지고 있든 그것은 상관없다. 우리가 단 하나의 요소만이라도 공유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 속 큰 위로와 기적이 될 테니까.



"나에게도 비슷한 시간들이 있었어."


내게 처음으로 완전한 타인과의 접점, 교집합을 느꼈던 건 교복을 입고 큰 가방을 둘러메던 학창 시절이었다.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 거리낄 것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던 그 시절, 수다스러운 우리들 사이에서도 유독 말이 없던 친구가 있었다. 농담이나 장난을 칠 때면 그래도 적잖이 함께 어울렸지만 이런저런 고민이나 삶에 대한 투정을 늘어놓을 때면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친구.


별다른 해답 없이도 털어놓는 그 자체로 적당한 해소감을 느꼈던 여고생들이었지만 매번 듣기만 할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그 친구에게 조금씩 불만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울음과 함께 "나에게도 비슷한 시간들이 있었어." 라며 입을 떼던 그 친구의 고백.


그 친구의 폭포수 같던 고백은 다름 아닌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시작되었다. 감격스럽던 그 아이의 첫 고백은 나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위로가 되었다. 좀처럼 내 이야기를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때는 예상치 못한 부분들까지 꺼내버린 참이었고 그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내내 까지도 마음에 걸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백들이 내내 꾹 삼켜내기만 하던 친구의 오랜 고민을 토해내게 했고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괜히 나만 지나치게 솔직했던 게 아니라서가 아니었다. 나의 고백이 그 아이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슷한 시간들이 있었다는 그 고백이 그 아이와 나를 조금 더 긴밀하게 연결해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종종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면 서로를 찾았다. 내내 함께 단짝처럼 어울려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누구보다도 가장 깊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게 우리의 교집합이 되었다.


이후로도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혹은 우연한 만남으로 맺은 관계들에서도 다양한 교집합을 찾았다. 아주 먼 곳에서 나고 자란 J와 내가 깊은 관계를 맺으며 함께 할 수 있었던 같은 신앙과 비슷한 책 취향 덕분이었다. 종종 말다툼을 하고 토라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H와는 함께 성장해온 10여 년의 시간이 있다. 멀고 먼 곳에 지내며 여전히 공부 중인 L과는 매년 여름에나 허락된 짧은 만남이 전부이지만 메일과 우편으로 여전히 끊이지 않는 대화를 하고 있는 건 비슷한 신념과 성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말하자면 입이 아플 만큼, 나열해보자면 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랄 만큼 다양한 관계 속 다양한 우리의 조각들이 있다. 그 조각을 꺼내 보일 용기와 우연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 다른 개성의 당신들과 내가 있다. 그 다른 모습들 때문에 때로는 한없이 멀게도 낯설게도 느껴지는 우리지만, 때때로 거울 속의 내가 어색하게 다가올 때가 있지 않은가.


온전히 나와 닮은 누군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혹은 나를 이해해주는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하여도 생이 끝나기 전에 그와 마주하는 기적이 모두에게 허락되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충분한 기쁨을 느낀다. 우리가 하나의 집합이 되지 못할지라도 살짝 포개져 교집합을 이룰 수 있음에.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와 마음들이 충분히 존재하고 있음에.





새 매거진 < 한마디 말에서 피는 것들 >은 작가가 일상을 살며 결코 가벼이 지나칠 수 없었던 한마디 말의 무게에 대해 다룹니다. 무심코 허공에 뱉어버렸던 말의 무게가 누군가의 하루, 일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말과 생각, 사색에 대해 다루기 위한 공간입니다.

*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현 텀블벅 3쇄 프로젝트 중.

https://www.tumblbug.com/garangbimaker3






매일 책을 쓰고 영화를 읽습니다. 언제나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와 블로그를 통해 구매 및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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