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지 않는 세상에서 제대로 먹고 산다는 것
언젠가 그런 글을 읽었던 것 같다. "식사는 하셨나요?" 혹은 "밥이나 한 끼 해요."라는 식의 안부가 남녀노소, 어떤 관계를 막론하고 가장 흔한 인사말이 된 이유는 전쟁과 분단의 굴곡진 역사로 제대로 된 식사가 어려웠던 과거 때문이라고. 선조들이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식사 여부로 가늠하고는 했다는 전래에 잠시 숙연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는 나 역시 괜한 빈말이 아닌 상대의 안부를 묻기 위한 마음으로 몇 번 건넸던 인사. "식사 잘 챙겨가면서 하고 있죠?" 혹은 "우리 집에 오면 맛있는 밥 지어줄게." 같은 말들로 쑥스럽지만 훈훈한 온기를 주고받으며 더욱 친밀해지는 관계를 느끼기도 했다.
"밥은 먹고 다니니."
그러나 때로는 다정하고 묵직해야 할 인사말이 상처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조금도 따듯하지 않은 온도의 인사. 도리어 싸늘하고 한없이 가벼운 인사.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워져 몸 둘 바를 모르겠는 인사말을 마주하자 나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밥은 먹고 다니니." 일순간 공기를 싸늘하게 얼려버리던 이 한마디는 이제껏 두어 번 들었던 것 같다. 동창회와 작은 모임, 비슷한 분위기의 자리였다. 대학을 같이 나왔거나 사회 초년기를 함께 보냈던 사람들, 편안한 듯 불편한 표정의 얼굴들,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질문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답변들.
긴 시간의 공백을 깨고 누군가를 만날 때는 그 공백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무심해 보이면서도 값이 있어 보이는 옷을 걸치고 사심 없는 듯 웃어 보이지만 머릿 속은 누구보다도 복잡한 상태로 서로를 마주한다. 서로가 조금 더 성장했음에 감개무량하다가도, 나와 아주 동떨어진 성공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근황을 나눈다.
어쩌면 그 애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처음 책을 냈던 대학 시절, 그 애는 어학연수를 떠나 있었고 여전히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애는 유일하게 내가 겪는 슬럼프를 이해해주는 친구였고 나는 그 애의 오랜 꿈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낮밤이 달랐던 우리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흘렀고 연락은 뜸해졌다. 그 사이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썼고 책을 냈다. 지하철이 아닌 침대에서 책상으로의 걸음이 출퇴근이 되었고 평일의 여행을 떠났고 주말을 원고와 씨름하며 보냈다. 내가 그러는 사이, 그 애는 그만의 치열한 시간을 끝내고 대기업 신입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꿈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했던 그 애가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의 주제는 <상사> 그다음으로는 <연봉과 보너스>였다. 기껏해야 몇 개월 인턴이 직장생활 경험의 전부였던 나는 할 말이 많지 않았다. 연초에 받게 될 보너스에 대해 이제 막 이야기를 마친 그 애가 별다른 반응이 없던 나를 보더니 꺼낸 한마디,
"얼굴이 왜 이렇게 핼쑥해?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녀? 책... 만 계속 쓰고 있는 거지?"
하필 타이밍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발밑이 깊게 파이는 것처럼 땅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굶지 않는 세상에서 제대로 먹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바보처럼 그 앞에서 "응. 계속 책 쓰지. 나 밥도 잘 챙겨 먹어. 걱정 마." 할 뿐이었다. 그러고선 서둘러 나온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다. 나올 땐 괜찮다고 생각해 걸치고 나온 옷가지가 초라해 보였다.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해서였을까, 얼굴이 한층 더 피로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흐르던 대화 가운데 불쑥 들어온 무례한 질문에 아니, 그보다는 순진하게 버벅대던 내 모습이 싫어서 적당한 핑계를 대며 일찍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 내내 나는 다시 반문했다. 더 이상 굶지 않는 세상에서 제대로 먹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삼시 세 끼를 다 챙겨 먹어야 잘 먹는 걸까, 한 끼에 수만 원을 쓰며 배불리 먹어야만 제대로 먹는 걸까. 아니,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들이 인정해주는 대학과 기업에 들어가 윤기 나는 대리석 바닥을 밟으며 살아야 제대로 먹고사는 걸까.
눌린 자존심과 배신감에 사로잡혀 잠들지 못한 새벽을 보내던 내가 찾은 제대로 먹고 산다는 의미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아직은 풍족하지 못할지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몇 끼니를 거를지라도 내가 내 삶의 구석구석을 만져낼 수 있는 삶.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서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가득한 삶. 그 삶이 내게 주는 것들로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만족할 수 있는 삶이었다.
이후에 다시 만난 그 애는 더 멋진 옷과 가방을 걸치고 있었지만 나는 조금도 그게 부럽지 않았다. 그 애는 가만히 있는 내게 <글을 쓰는 삶>과 <여행하며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물었고 나는 그 애의 눈에 비친 내가 여전히 “제 길을 찾아가는 멋진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게 지난날의 내게 큰 위로가 됐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심도 없이 그 애에게 말했다.
"잘 먹었어. 다음엔 내가 살게. 매일이 고기반찬이진 못 해. 그래도 친구 밥 한 끼 사줄 순 있어. 나도 안 굶고."
그렇게 뱉고나니 나는 지금보다 더 제대로 잘 먹고살고 싶어졌다. 한눈 팔지 않으며 내 앞을 보고 묵묵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길 위로 고기반찬이 쏟아질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뭐, 가끔 얻어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새 매거진 < 한마디 말에서 피는 것들 >은 작가가 일상을 살며 결코 가벼이 지나칠 수 없었던 한마디 말의 무게에 대해 다룹니다. 무심코 허공에 뱉어버렸던 말의 무게가 누군가의 하루, 일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말과 생각, 사색에 대해 다루기 위한 공간입니다.
*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현 텀블벅 3쇄 프로젝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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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책을 쓰고 영화를 읽습니다. 언제나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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