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대변하는가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온도와 의미에 대하여
그런 말이 있다. 말은 ㅏ 다르고 ㅓ 다르다는 말. 쓰는 과정도 보이는 것도 비슷한 듯하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의미를 전하는 말. 말이라는 것은 이렇듯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참 복잡하고 어렵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생각을 하던 중 나는 우연히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ㅏ, ㅓ. 거울을 두고 보면 서로가 뒤바뀌어 보인다는 사실. 이 작은 발견은 내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도록 했다. 나에게서 출발해 너(타인)에게로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그 의미들을 발전 혹은 변질시키는 걸까. 뿐만 아니라 같은 말이라고 하여도 그 말이 대변하는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서 그 의미 역시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ㄴ +ㅏ]라는 단어가 대변하는 입장이 마주 보고 있는 타인에게는 [ㄴ+ ㅓ]로 읽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가 습관처럼 뱉어왔던 몇 문장들 가운데, 타인에게만 적용했거나 자신에게만 허용했던 문장에 대해 이야기 보려고 한다. 문장이 대변하는 입장에 따라 얼마나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나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문장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괜찮은 변명 혹은 위로. 공교롭게도 나에게 전혀 상반된 의미를 안겨준 이들은 모두 한때 나와 가장 가깝던 사이였던 연인들이다.
스물한 살, 성인이 되어 처음 만났던 그 애는 <그럴 수도 있지>를 습관처럼 뱉었다. 하루에도 수 번씩, 나른한 표정과 함께 마치 날숨이라도 뱉듯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뱉던 그 문장이 나는 나름대로 멋져 보였다.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하고 더 많은 속박과 자책으로 하루하루를 이끌어나가던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에 이끌렸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시험기간에 도서관은커녕 강의실에서도 만나기 어렵던 사람. 매일을 즉흥적으로 떠나고 머물렀던 사람. 삶이 녹록지 않다던 고백과는 다르게 조금도 절절해 보이지 않던 사람-. 그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이나 충고에도 그는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 마법의 문장을 달고 살았다. 휘리릭, 아무렴 괜찮은, 무심하고 시니컬한 사람으로 변신하는 마법. 그 마법의 유효기간은 본인만 모르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여유롭고 어른스럽게까지 느끼던 그 문장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듣기 싫어졌다. 자신의 무력감과 게으름을 숨기기 위한 변명만으로만 뱉던 <그럴 수도 있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언어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주변을 위해서 아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조금도 변화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지막까지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며 그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역시 그의 말처럼 어떤 여운도 남기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그럴 수도......>라는 식의 문장을 마주할 때면 진저리가 날 만큼 불쾌했다. 그럼에도 예외가 있었으니 몇 해가 흐른 뒤 다른 입을 통해 들었던, 자신을 위한 변명이 아닌 타인을 위한 <그럴 수도 있지>가 그랬다.
습관처럼 뱉던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이 주는 넉넉함이 참 좋았다. 심술 가득한 얼굴로 그럴 수는 없어!라는 말로 응수하던 나였지만.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 얼굴은 그리 잘나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우리가 있었다.' 중.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2017)>, 가랑비메이커
시간이 흘러도 스스로에게 붓는 기대와 직관적인 평가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여러 이유들로 바빴다. 바쁘게 달리는 만큼, 도달할 수 있는 게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기에 나는 자주 낙망했다. 그럴 때마다 내게 슬며시 다가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시작되는 문장들로 위안을 주던 사람이 있었다.
"그럴 수도 있어. 열심히 한 만큼 보이지 않아서 많이 억울하겠지만 조금만 더 가보자. 다들 처음부터 잘 했대? 아니야. 부끄러워서 그런 척하는 거지.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랬잖아. 알지?..."
내가 지쳐할 때마다 듣게 되는 말이었지만 그의 <그럴 수도 있지> 뒤로는 매 새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조금도 습관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위로의 온기가 좋았다. 과한 액션이 없어도 진심이 닿았다. 실패를 잊고 다시 해 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문장의 마법은 이런 순간들에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후로도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그의 위로를 스스로에게 해보곤 한다. 마법과 기적은 유효하다. 여전히.
내가 두 만남에서 들었던 <그럴 수도 있지>는 하나의 말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변명이 되었는가, 타인을 향한 위로가 되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남겼다. 나는 이 기억들을 계기로 텍스트, 그 자체가 아닌 텍스트가 향하는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되돌아본 나의 언어습관 역시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기적인 방향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대변하는 언어와 타인에게 향하는 언어의 무게와 온도는 분명히 달랐다. 내가 무심코 흘려보냈던 말들이 마주한 당신들에게는 어떻게 전해졌을지 생각해보다 그만 아뿔싸를 외쳤다.
몇 번을 읊고 고치는 글과 달리,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입술 사이로 흘러가 버리는 말은 너무나 빠르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도 지워지지 않는 온도와 무게를 남겨둔다. 시간이 흐르며 그 무게와 온도는 우리의 분위기가 되고 기억이 되어 남는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세음절을 남기고 서로 다른 모습을 남기며 사라진 그들에게 나는 어떤 문장으로 기억되었을지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 내 곁을 머물다갈 이들에게 부디 조금 더 묵직하고 다정한 언어로 남고 싶어 졌다. '나'를 대변하는 언어와 '너'에게 향하는 언어의 격차를 줄이며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친밀한 우리가 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작은 차이들이 오해가 되어 멀어지는 세상 속에서 조금 더 서로의 언어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새 매거진 < 한마디 말에서 피는 것들 >은 작가가 일상을 살며 결코 가벼이 지나칠 수 없었던 한마디 말의 무게에 대해 다룹니다. 무심코 허공에 뱉어버렸던 말의 무게가 누군가의 하루, 일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말과 생각, 사색에 대해 다루기 위한 공간입니다.
*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현 텀블벅 3쇄 프로젝트 중.
https://www.tumblbug.com/garangbimaker3
매일 책을 쓰고 영화를 읽습니다. 언제나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와 블로그를 통해 구매 및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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