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교집합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된다.

by 가랑비메이커
글쓰기 수업 중 써낸 각자의 주제


만원 버스 혹은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 무표정한 얼굴로 그 무엇도 관심 없다는 듯이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이들을 볼 때면 늘 엉뚱한 상상을 했다. 벌떡 일어나 <어제 무얼 먹었나요?>,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는 뭐예요?> 따위의 일상적인 대화를 걸어보는 상상. 그러면 어쩌면 그들은 굳은 얼굴을 풀고서 머쓱한 웃음이나 생기를 머금고 말하지 않을까? 내가 엊그제 먹었던 된장찌개를 먹었고 지난주 웃다가 실신할 뻔했던 그 영화를 참 재밌게 봤다고. 글을 쓰기 시작하며 이 엉뚱한 상상력은 보다 자주, 구체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그건 내가 보다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겐 매일 나가는 사무실도 점심을 함께 먹는 동료도 없지만, 그 대신 수업을 하며 토크를 하며 마켓을 나가며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돌아올 때면 얇은 빗장이 사라지고 굳은 마음과 긴장이 녹고 마침내 부드러운 미소와 공감만이 남는다. 그건 다름 아닌 이야기 안에서 각자의 사연에서만큼은 모두가 비슷한 온도와 장면을 마주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전혀 다른 직업을 가졌어도 연령과 성별이 달라도, 누군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을 때 내내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불규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춘다. 그리곤 마음으로 말한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그 얘기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있지.”라며.


오늘, 봄이 오는 가운데 오랜만에 수업을 진행했다. 초반의 옅은 긴장감에 걱정하기도 잠시, 에세이 과제를 위해 각자가 써낸 서로 다른 주제를 통해 모두가 서로의 교집합을 발견했다.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기 위한 초반의 의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모두가 서로의 주제에 각자만의 이야기를 더해냈고 결국은 자신이 아닌 내 옆의, 내 대각선의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꺼낸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으니. ㅡ어떤 자세로 당신이 서있든지, 어떤 옷을 입고 밖을 나섰든지 상관없이 나는 당신을 통해 언제든 한 조각의 나를 만날 수 있음을 믿는다.






하루 가운데 한 장면, 한 문단을 나눕니다.

당신의 인디, 가랑비 @garangbimaker

[문장과 장면들] @sentenceandscenes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을 썼습니다.


책을 펴고 영화를 씁니다. 마주하는 두 눈을 통해 세상을 보며 에세이를 함께 쓰는 시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댓글과 좋아요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