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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09. 2021

관계성

오귀스트 에르벵


   얽혀 있지 않으면 홀로 있지 못하다

   독단적 존재로 혼자 있고자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세상 것들에 대한 모호한 판단을 갖고 있다.

진리는 없고 부단히 찾아 헤매야 한다. 존재 근원은 없다. 그것에 얽매이면 필연성에 오류를 범한다.

얽혀 있지만 나 혼자가 아닌 그와 너와 우리와 함께 얽혀 있는 것이다. 더불어 그것과 이것과도 함께 얽혀 있다. 멀리 다녀와서 자기를 바라보는 이, 가만히 앉아서 먼 곳을 보는 이. 이들 모두가 진리를 구하는 것은 같다. 하지만 방법이 다르다. 그 다름이 곧 각자의 진리 구현이다. 몇 개의 눈을 가지고 삶을 사는가. 하나의 눈으로 하나의 세계를 관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면 몇 개의 눈으로 몇 개의 세계를 해석하고 생성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 물질을 유동하는 흐름으로 읽는 이가 있고 어떤이는 물질을 유일한 소통과 욕망의 구조로 바라본다. 초월성에 얽혀 있지 말고 발을 디딘 세계를 긍정할 때는 사랑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믿지 않고 못 믿는 이가 사랑을 구한다. 사랑은 실현이며 발디딘 세계에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독성을 가진 뱀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독성을 가진 뱀을 긍정한다. 뱀은 뱀의 지혜로 독을 품었다. 뱀의 숲이 뱀에게 독을 주었다. 그 숲을 불태워 버릴 수 있는가. 시를 품은 자는 독을 품은 자인가. 선한 꿀꿀 품은 자인가. 화가의 물감이 미끄러지는 유동의 불쾌함을 주는 것은 정지가 없는 뒤얽힘이며 속이 매쓰꺼워지는 무의식이며 물컹거리고 끈적거리는 유동이다. 우리는 고정된 시점에 붙들려 있는 것에 익숙하기에 이러한 유동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강변에 가서 서 있으며 해거름 강의 어둑한 질감 안에 미끌거리며 흘러가는 강의 옅은 풍경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 수많은 힘의 의지들이 내게로 다가오면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관계를 맺으면 이 세계는 실체의 무엇이 아니라 다양성의 혼융을 만들 수 있다. 세계를 믿어라. 어떻게? 꿈틀거리고 유동하고 미끄러지고 욕망하는 것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이 모든 의지를 긍정하고 표현하는 미래성.


Auguste Herbin - Composition [1929]



Auguste Herbin - Cherries [1924]



Auguste Herbin - Book and Fruits [1911]



Auguste Herbin - Composition [1933]



Auguste Herbin - Composition [1929]

[Sotheby’s, New York - Oil on canvas, 64.7 x 80.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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