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감정
사철나무 아래 수국의 감정, 비에 젖는 감정, 덩달아 핀 첫 번째 감정, 겨울과 봄 사이 몇 번이나 거처를 옮겨 다닌 감정, 나무와 수국을 적시는 소낙비의 감정, 젖었으나 아직 더 젖어야 할 감정, 연분홍에 백옥의 감정, 수국을 눈에 넣고 들어간 어둑신한 책방의 감정, 젖은 발목에 달라붙은 자잘한 모래 알갱이의 감정, 다시 찾아가 우산을 받치고 들여다보는 감정, 비에 젖은 마음을 수국에 주는 감정, 여태껏 살아도 알아채지 못한 생애의 감정, 살아도 견딜 수 없고, 견뎌도 또 견뎌야 할 감정, 아무도 없는 자리에 펼치는 우산의 감정, 쪼그리고 앉아 수국에게 얼굴을 주는 감정. 다시 짙어다오 너의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