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에 서서
-김정용
피부에 한 겹 파도로 와서 흐느끼는 한 겹 잿빛을 보아라
광휘의 눈을 하고 구르던 돌들 이월의 잠깐 해바라기를 보아라
물에 우는 물을 보아라, 물에 젖는 물을 보아라
하오 네 시 햇살에 들끓는 성욕의 들판을 보아라
고사한 오동나무에 매달려 악기를 깨우는 딱따구리의 타격을 보아라
쓰레기 더미를 뒤진 흔적에도 음악이 흩어져 있다.
바람에 먹을 갈던 까마귀는 아침 창호지 같은 하늘을 찢었다
콩밭을 파헤쳐 놓은 염소 발자국 틈에 염소 새끼의 울음을 빼앗은 흰 돌
천지 갈변 현상 가뭄에 떠나는 흰구름 무전여행의 회귀는 먹구름 일까
소금 친 채소에 물이 나오는 시간 같은 구름 여행의 순도를 보라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초고추장 묻은 닭의 가슴살 희디흰 순결로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미안하다, 이월! 한 잎에 바람의 시린 발을 보아버렸다
열기를 잃어버린 발이 데워지려면 등짐을 부리러 가야 한다
망치를 내리고 담배를 무는 휴식 시간은 스치는 바람결이 주고 간 것이다
하우스 딸기를 먹으며 이월의 눈망울이 망치 소리에 피는 걸 행인이 보고 갔다
살구나무 가지가 파르르 떨었다 담장 밖에서 떨었는데, 집주인의 내막엔 낭하가 있었다
슬픈 연명에 슬퍼 마라. 핌도 없이 지는 눈망울에 밤하늘은 지천의 별을 박아 놓았다.
흠뻑 젖을 수 있는 햇살의 농도를 모르는 세상의 소식들
이월이, 이월의 곁에 서서, 떠남의 속내를 다 들려주고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