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김정용
눈자위의 애인아 탈진의 벽 아래 역광으로 오는 홍자색 얼레지의 공기로 너를 흡입하겠다 일회용이고 다족류인 민들레의 한낮 우리 시너 같이 휘발되는 홀씨의 연정은 어떻겠니 모든 춤은 몸의 깨진 방향으로 갖고 있어 나비의 연인은 서로의 깨진 방향을 메꾼다
눈자위의 애인아 새들의 이력이 바뀌어 어미새는 추락하고 잎새랑 닮은꼴의 어린것은 장례도 없이 둥지를 뜰 때 사랑은 영원한 할부 납입 같아서 날 때부터 부과된 것이라서 분할상환 날짜가 다가오는 사랑은 다급한 구두와 원경에 쫓긴다 눈자위의 애인아 너를 눈에 안고 나를 사는 것도 할부금 냡입기한이겠다
풀밭의 폭발이 있었고 이윽고 춤은 태어났다 춤이란 자기를 관통하는 불꽃 석탑 같아서 너를 찾았을 때는 새벽의 호숫가 물새들은 청동상으로 굳고 경건하였다
눈자위의 애인아 너는 미끄러운 종교가 아니었고 비틀거리는 종교였다 녹아버릴 기도를 가지고 있어야 백련화 가능하겠다 파꽃을 기다리는 비탈진 채마밭에서 가짜 기도는 겨울을 찢을 수 없기에 우리는 별을 안은 동녘 연인이 아니겠는가
야근을 마치고 힘없는 꽃을 피우고 걷는 눈자위의 애인아 버스 타러 걷는 동안 나의 꽃들은 화들짝, 화들짝, 심장이 뛰었다 너의 파리한 걸음에 안기겠다 싶어 화들짝 뒤꿈치를 들었다 아 이건 꿈이 아니라 비현실 비현실에 기생하는 혼숙의 방
눈자위의 애인아 양복을 맞추듯 한 번 입은 꽃을 다시 입는 눈자위의 애인아 몸피가 줄어 한 번 피어낸 꽃을 다시 못 피우는 애인아 한 번의 몸을 몇 벌의 봄으로 갈음하는 갈피 못 잡는 분분한 애인아 시한이 못 박힌 기한 내에 별이 될 못이라도 쾅쾅 우리 서로의 눈에 쾅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