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마시고

by 일뤼미나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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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마시고

- 김정용



마시고 서마지기 달의 생리통 복사꽃이 날렸다


마시고 잊힐까 생선가시 같은 것이 목에 걸리게 잊지 말라 초승달


마시고 포구에 닿아 물을 밀어냈지만 돌아오는 흰 젖빛에 사람은 무언가에 우는가


마시고 가출한 옛길 다시 가보았네 매혈하는 이는 복사꽃이 되었네 결막염의 여인은 갈잎이 되었다는 바스락거림


마시고 버스정류장 플라스틱 의자에 하염없는 괜한 기다림 아직 덜 보낸 마음이 있어 달이 그리하라 해서


마시고 진공 인간이 되었네 나의 내력엔 밥공기 같은 사랑이 없었네 밥공기를 사이에 두고 목단으로 마주 피었던 옛 서정은 호흡을 주지 않네


마시고 삼월 개나리 신물이 올라왔네 음악 없는 악기 공장의 입구까지


마시고 펼치는 오래된 책에서 옛 여자의 지루한 시간 아직도 손의 온기를 빼앗네 갈피에 넣어 덮으면 달의 체위로 어슴푸레 온기 없는 어슴푸레


마시고 걸어오는가 내 불가역적 첫사랑 들아 뜰이 없고 강변이 없고 촉수도 없는 공단 입구야.


마시고 눈썹에 탄가루 묻히고 팔레트 위에 쪼글시고 앉은 이국의 얼굴 들아 어서 달의 기울기로 고향을 걸어가라


마시고 푸르자 빈 의자에 푸르자 확인 사살당한 정치범들에서 흘러온 역사로부터 푸르자 달을 마시고 혁명에 녹슬었던 혈통에 푸르자 나는 회색 언덕에서 밥 집을 해야겠다 해가 지는 남루에 밤의 남루를 포개며 푸른 초식을 팔겠다 마시게 하고 너를 등 푸른 초인으로 돌려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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