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큰둥할 때
시큰둥할 때 고향에 제일 높은 산 올라서 자작나무가 몇 그루 사는가 헤아리는 헤맴
시큰둥할 때 말콤 T 리펙의 공허한 인간 군상들
시큰둥할 때 비트겐슈타인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오막살이에서 하룻밤
시큰둥할 때 보드카를 한입 털어놓고 몸을 부르르 떨고 달아오르는 몸을 냉수욕으로 시켜
시큰둥할 때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지,” 여러 번 듣게 되는 선술집에 혼자
시큰둥할 때, 번잡한 식당에서 밥 먹으며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소환해서 씹어대는 인접한 이들의 이야기 훔쳐 듣기.
시큰둥할 때 김수영이나 백석을 읽고 나서도 시큰둥할 때 시 같잖은 걸 내갈긴 걸 읽고 확 깨는 거
시큰둥할 때 탁구장 가서 아무하고 한판 붙는 거, 이기고 지는 게 고루해서 시원하게 한 판
시큰둥할 때 무릎걸음으로 물걸레질, 뜬금없이, 이웃 어른의 한 여름에 겨울 외투를 걸친 치매의 혼잣말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시인의 시는 더는 읽지 않기로, 지금까지 감동받은 듯 읽어주었으면 됐고,
농사지은 대파 한 아름을 만 원에 주시는 촌로의 한 아름의 말 “바빠서 죽을 시간 없다”
시큰둥할 때 맨발에 슬리퍼 끌고 들판에 가서 어린 날의 성탄목 불 켜졌으려나
시큰둥할 때, 너랑 연탄난로 곁에서 너랑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려서 세상에 없는 키스나 애무
시큰둥할 때, 내가 죽었고 이후 관공서 들어선다고 어서 이장이나 파묘하라는 데 가족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