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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Dec 31. 2023

창가에서 - 나의 타자


 나의 타자


  나의 타자는 누구인가? 나의 곁에 이웃인가. 그 이웃은 내게 밥을 대접하고 또 식사 대접을 기다리고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를 험담을 하는 타자인가. 나의 타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전망치를 가진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신을 믿는 유신론자인가. 아니면 무신론자이면서 유물론자인가. 나의 타자는 내게 동일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너' 인가. 아니면 내게 복종을 강조하는 '대타자'인가. 절대적 우위의 '너' 나의 타자인가. 내가 숭배하고 경외할 대상인 '너'가 타자인가. 아니다. 너는 나의 타자가 아니다. 상품의 가치를 공유하고 동시대인 들은 더더욱 나의 타자는 아니다. 나의 타자는, 바랜 사람, 거친 손등을 가진 사람, 바랜 신발을 신은 사람, 피난과 노동과 외면받은 상처로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사람이 나의 타자이다. 그는 나의 외부에 있으며 나의 내부에 심장을 주는 사람, 내게 쿵쾅거리는 심장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다. 나의 타자는 나의 언어에 노출되지 않았고 나의 언어로 미화되지 않은 사람이다. 바래고 희부윰하고 새벽 안개 속에서 잠깐의 햇살 온기를 가진 사람, 추운 사람이다. 배고픈 사람이다. 집에 냉기가 서린 사람이다. 난방이 되지 않고, 거처가 없고, 맨발로 달아난 사람, 보퉁이를 껴안고 아이를 달래면서 달아난 사람, 외부가 없는 무한한 외부인이다. 그는 내재된 슬픔이 없다. 오로지 지금 당장의 거처가 없는이다. 그가 나의 타자이다.  디아스포라의 어원은 흩뿌리다 퍼트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여행을 하려 한다. 나의 '타자'를 만나는 여행, 아니다, 여행은 사치스러운 낱말이다. 나의 타자를 찾아가는 도보. 그런 도보를 해보려 한다. 가능하다는 사실보다는 불가능하다는 지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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