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허름합니다. 담쟁이넝쿨 가지와 화병이 허름합니다. 벽돌 위 붉은 바탕과 싯누런 배경도 허름합니다. 그리고 짙은 그림자도 흐릿하긴 미 찬가지입니다. 셔츠 하나에 이 천 오백 원 하는 보세 옷 가게에서도 가장 낡은 셔츠를 걸쳐 입은 듯 허름합니다. 때때로 창고형 보세 옷가게에 가서 누군가 입었던 옷 사서 빨아 입을 때. 옷도 사람을 닮아간다는 생각 하면서, 이 정물은 오늘 내게 한 벌의 낡은 옷처럼 다가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햇빛은 어디서 허름한 이 정물을 찾아와서 또 그렇게 허름한 그림자를 낳게 했는데요. 어느 청년기 시절 홀연히 집을 떠나 한 주일 떠돌았을 때, 어느 낯선 도시의 역 대합실에서 나는 나를 버려진 화분처럼 방치 한 적 있었는데, 허름한 사람들 틈에 끼어 꼬박 밤을 새우며 나와 세계와의 불화를 삭혔던 기억이 저 그림자 같네요. 오늘 또 누군가 골목이나 아파트 관리실 근처에 살아 있으나 재미없다는 이유로 화분을 버리는 이가 있고, 그걸 또 주워서 자기 자기 집 베란다나 창가에 정물로 소박하니 물 주고 키우는 이도 있겠죠. 오늘 내 마음의 정원에 마티스의 정물을 데려다 놓고 물 한 잔 따라주고 나서, 나도 한 정물처럼 벽에 기대 챈 허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