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피메노프
마르쿠제는 자본주의를 소외 개념으로 진단했습니다. 19세기는 일한 만큼 돈을 주지 않고 20세기는 일만 시킨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자기본능을 억제하고, 작업의 조직화를 통해 인간기계가 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도구적 이성이라 부릅니다. 일차원적 인간은 한 자리에서만 맴돌고 현실비판적 사유 없이 시스템에서 성공할 것에만 몰입합니다. 이것뿐만 아닙니다. 대중문화도 우리의 여가 시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TV를 끄고 나면 멍 해 집니다. 내가 갑자기 낯설어집니다. 타인으로부터는 사회철학적 소외이며, 진정한 소외는 나에게로부터 옵니다. 여기서 저항할 수 없을 때 현존 질서와 타협합니다. 현실적 성공은 물건에 집착하는 패티쉬와 같아서, 눈 만 뜨면 일터에 달려가 성과를 올려야 하는 것은 정신의 페티시즘입니다. 위대한 거부를 해야 합니다. 자기를 얽어맨 시스템을 무너 뜨려야 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유행어나 지껄이는 교양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사내들이 여기 직장에서 쫓겨나면 그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창조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런 진실을 자주 만나야 자기 소외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