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림읽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앤드류 와이어스

by 일뤼미나시옹

바람을 보았는지요. 바다 냄새가 쪽물 든 듯 배어 있는 바람을 보았는지요. 껌을 질겅이는 술집 여자의 몸 냄새를 풍기는 바람을 보았는지요. 출항 않는 배의 심기를 건드리듯 해수면의 고요를 실루엣처럼 흔드는 바람을 보았는지요. 바다를 몇 번이나 뒤집어엎어놓고 이튿날 바다를 청포묵처럼 잠재우는 바람을 보았는지요. 떠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바닷가에 발목 집힌 바람을 보았는지요. 낡은 가방을 들고 찾아와 덧창을 열었을 때 가슴 속살 풀어 보여주는 바람, 피부에 피부가 닿는 바람, 흔들리는 살결에 흔들리는 살결을 주는 바람, 이틀이나 사흘 창 밖에서 기다리는 바람, 누가 알랴. 내가 여기를 떠났다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길에게 길을 묻듯 내 얼굴에 기록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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