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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12. 2019

크림트, 커다란 나무


촌락에서도 더 깊은 촌락으로 흘러가는 휘어진 국도변. 적벽돌 간이 버스정류장 옆 키 큰 미루나무는 해 종일 커다랗게 기다리고 있다. 시골로 도피성 여행을 온 자들이나,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 아이를 기다리거나, 소읍으로 장  보러가는 노인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미루나무의 잎새는 햇살을 풍부하게 받아내어  황금빛으로 빛나고  나무는 저의 사방을 황금빛 영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당신이 혹여 나무 아래  혼자 서 있으면 분명 황금의 눈물을 흘리는 나무와 이별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이별나무' 라 자칭 하는 그는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자기를  흔들고 깊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가 내려놓은 그늘은 푸르게 짙고 깊게 우울하며 동물의 슬픈 밤 울음처럼 서늘하다. 하여,
   누군가 그늘 속에서 잠시 햇살을 피하거나 보퉁이를 내려놓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만 나무의 오래된 이별 이야기를 몸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나무의 이별이란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누구나 나무의 그늘 속에 들면 나무의 이별이 저의 것이 돼버리는 것이다.
   마을을 떠나지 않는 미루나무, 커다란 울음을 천둥번개의 밤에 섞어 우는  미루나무여, 어디서 너는 쓰라린 이별의 마음을 품고 와서  그 마음을 이리도 부풀려 놓았는지.
   우리는 사라져버린 시간 속에 저 마다  한 개씩 이별의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지금  황금빛으로 이별을 번쩍이고, 눈부시게 있으나  이별의 무늬로 번쩍거리는 나무와 같아서,
  너를 누가 어디서 보고 또 보고 있는 듯 어디서 누군가가 멀리서 다만 네 흔들림의 언어를 읽기나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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