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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12. 2019

헤다 스턴 : 무제


 아프니까 좋다. 겨울 감기 한번 없이  봄 거쳐  여름에 와서야 거룻배가 뭍에 비스듬히 쓰러진 듯 몸이 한번 앓는구나. 콧물 나고 눈시울이 뜨겁고 목도 따갑다. 이렇게 아픈 것은 아픈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서해바다처럼 앓는다. 앓아누웠으니 잔물결 같은 생각들 반짝이며 가슴께로 밀려온다. 병이여 충분히 내 몸을 괴롭히길. 나는 앓으면서 사유의 산책을 하고 밤의 내밀한 적막을 호흡할 것이며, 세계와 나의 간극 사이 수많은 불호들 중 하나와 화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주 앓으면 화해의 양도 늘어나는 것이다. 빗줄기 속 와이퍼 지나가면서 보여 주는, 각인되지 않고 감동도  없으며 색깔도 찾아보기 힘든  풍경 같은 아픔. 앓을 땐 이렇게 앓아야 한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투명해지는 것을, 몸이  조금만 아파도 마음의 빗금들이 지워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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