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4(일)
아침 햇살이 너무나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루며 한 주를 지낸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다.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했다. 고기와 숙주, 부추, 잡채, 두부를 넣은 고기만두와 새우와 야채를 넣은 새우만두를 원 없이 만들어 식구들 볼이 미어져라 만두를 먹였다. 냉장고, 냉동실 정리를 싹 해서 칸칸이 컨테이너에 담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이름표를 붙여서 정리했다. 일주일 동안 9시간의 수업을 했고, 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틈틈이 수업 준비를 했다. 온라인 수업이기 때문에 내가 준비한 수업 자료들이 차곡차곡 인트라넷에 쌓여가고, 그것들은 모두 추후 내 수업의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에 소비되었다는 느낌보다는 나에게 투자했다는 느낌이 나서 행복했다.
저녁 8시 반이 되면 친구들 두 명과 영어 소설 낭독시간을 갖는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다. 영어 소설인 데다가, 만연체와 은유와 비유, 비꼼의 문장으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다 보니 모르는 단어와 이해 안 되는 문장들로 숨이 턱턱 막히지만, 울퉁불퉁한 그 방지턱들을 뚫고 우리는 거의 6개월을 함께 독서하고 있다. 멋있는 중년이지 않은가.
일요일에는 독일에 사는 친구와 둘이 성경공부를 한다. 누가 리드하지도 않고 그저 만나서 자식, 남편, 진로, 관계 등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성경에 비추어 함께 나누며 두 시간가량을 보낸다. 이 시간도 오늘이 세 번째 시간이다. 이 시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뮤트 모드로 해 놓고 각자 찬송가를 부르는 첫 번째 순간과 두 시간 넘어의 넋두리를 끝내고 마무리 기도를 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우리의 넑두리에 그 어떤 고난과 좌절과 자괴감과 분노와 실망이 있었다 해도 우리의 마무리 기도에는 희망과 소망과 격려와 위로와 믿음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래서 이 두 시간은 그냥 아줌마들의 수다에 그치지 않고 무거웠던 나의 일상과 마음의 더러움들을 씻어내고 새로운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날 소망을 갖게 한다.
틈틈이 불어 공부를 한다. 내가 하는 불어 공부는 1. 문법 책 보고 문제 풀며 정리하기, 2. 유명 프렌치 유투버 시청-프랑스 1위 유투버 cyprien의 유튜브를 보는데, 너무 재밌다. 물론 자막이 없었던들 재미 파악을 어찌했겠냐 마는 그래도 꾸준히 보다 보니 프랑스 유투버들의 유머 특징을 조금 파악할 듯하다. 일단, sarcasm이 있어야 하고, 흐름이 매우 빠르게 쉴 새 없이 떠들어 줘야 한다. 그리고 좀 더티한 부분이 반드시 필요한데 화장실이나 분비물 유머는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게 프랑스 1위 유투버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서 요즘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줄임말이나 속어 등을 알게 되는데, 뭐 큰 쓰임새가 있진 않지만 그냥 재미는 있다. 한국말로 '얼죽아' 나, '알쓰'를 알게 되는 외국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3. Easy French라는 유튜브 불어 학습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공부한다. 프랑스 파리의 길거리를 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주제의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영상인데 그럭저럭 공부가 된다. 이렇게 세 가지 방법으로 불어 공부하는 것도 때론 버겁다. 그나마 문법 책을 하나 붙들고 공부하고 있으니 언젠가 그 책이 끝나면 실력은 몰라도 성취감은 남아 있겠지. 부디.
일주일 열심히 살았다. 무엇보다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는데 그게 참 행복했다. 행복 비법으로 우리 딸이 알려 준 방법이 매우 유용한데, 40년 후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로 잠깐 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라고 했다. 이건, 영화 '어바웃 타임'의 남자 주인공이 했던 방법인데, 이 방법을 사용하면 오늘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40년 후엔 지금의 내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겠는가.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40년 후보다 월등히 젊고, 가족 모두 월등히 건강하고, 누구 하나 소멸되지 않았고, 모두 내 곁에서 내 사랑을 받아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만으로 만족이다. 지금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래서 하루하루 이 순간순간 너무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