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6 in Vancouver
엊그제 조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라멘집을 찾았다. 상호는 라멘집이지만 사장님은 이십 년 넘게 식당을 운영 중인 한국분이시라고. 식사하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러 일부러 나오셨다. 이곳은 일 년째 영업 중.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식당 안은 한가했다. 조카는 이곳에서 3주 하루째 근무 중이었다. 스물아홉인 조카는 중학생 때부터 많이 아팠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하느라 학교와 집 그리고 병원을 오간 시간이 참 오래다. 그런 조카가 비록 타국이지만 건강하고 맑은 표정으로 데이 케어 선생님을 하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어 안쓰럽지만 기특한 마음도 크다.
아르바트이하면서 조카가 받는 페이는 최저 시급 16.75달러. 원화로 시급 16,269원. 올해 기준 우리나라의 최저 시급은 9,620원이다. 아마도 2024년에는 처음으로 1만 원이 넘을 전망이다. 이에 비하면 1만 6천 원이 넘는 시급은 꽤나 많아 보인다. 하지만 2주 넘게 생활하면서 보니 물가 대비 최저 시급은 그리 많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본업인 데이 케어 센터 시급은 2년 차인 조카가 약 25불 정도란다. 나는 우리 먹은 밥값을 계산하면서 팁을 20%를 탭 했다. 조카가 받을 거니까. 그런데 다음날 처음 알았다. 엊그제가 조카가 난생처음으로 알바에서 팁을 받은 첫날이라고. 그것도 첫날 100불 넘게. 그랬다. 알바 3주간은 트레이닝 기간. 우리의 수습 기간. 이 기간에는 최저 시급만 받으면서 자기 역할을 익히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그만두는 이전 알바와 3주를 함께 근무하면서. 그리고 4주 차부터 팁을 받을 수가 있단다.
운전 자격에도 여러 가지 구분을 두고 있다. 차를 달리다 보면 알파벳 L이 쓰여 있는 붉은색 카드, N이 쓰여 있는 초록 색 카드를 뒷 유리창에 붙이고 있는 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최초 운전면허 시험에 통과하면 면허증을 발급해 주는데, 이 면허증은 한시적인 임시 면허증이다. 발급일자와 관계없이 2년 만료 일자는 생일. 이민오기 전 운전면허증 없이 와서 이곳에서 합격을 한 경우에는 L, L을 발급받은 지 일정 기간이 지나 다시 도로 주행 시험에 합격하거나 자기 나라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고 2년이 경과한 후 이곳에 오게 되면 N자의 자석 스티커를 함께 발급해 준다. Class7인 우리나라 2종 오토 느낌, Class5는 여기 사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자동차 - 승용차, SUV, 픽업트럭 - 를 운전할 수 있는 면허증. 며칠 전 아드님 친구 즈마야도 Class7N에 합격을 했단다. 한국에서 2종 오토 면허증을 취득학 이곳에서는 아직 운전을 하지 않는 아드님은 이곳 면허증으로 갱신하게 되면 Class 7L에 해당하는 초보다.
운전과 관련하여 한 가지만 더. 도로에서 자주 만나는 교차로. 그 교차로에 STOP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 아래 보통 3 WAY, ALL WAY와 같은 안내 표지가 있다. 이 교차로는 세 방향, 네 방향에서 오는 차량들이 무조건 일단 멈춤을 해야 하는 곳이다. 신호등이 없다. 그런데 누가 먼저 움직이는 가에 대한 운전자들의 룰이 명확하다. 흰색 정지선에 와서 멈춘 순서대로 움직인다. 선착순이다. 그 순서를 운전자들이 서로 보면서 자유롭게 결정한다. 그래서 내 순서를 기억해야 한다. 방향별로 한 대씩 엄격하게 움직이는 속에 매우 자유롭고 더 안전이 보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완전 정차를 했기 때문에 속도가 일단 느리고 운전자들끼리 필요에 따라 눈짓이나 수신호를 하면서 먼저 가라, 내가 간다라고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나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타운하우스다.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주욱 이어져 있는 주거 단지. 타운하우스는 물론 밀집 주거단지의 집들이 대부분 목조 가옥이다. 위도상 타이가 침엽수림이 풍부하게 발달하는 이곳. 어디를 가나 아름드리나무가 흔하다. 파크라고 이름 붙은 곳에서는 어른 둘이 팔을 이어도 다 감싸지 못할 나무들도 많다. 이렇게 나무가 넘쳐나는 나라여서 목재 가옥을 짓는 건 당연하지 싶다. 다운타운으로 오가는 프레이저강가에 언제나 거대한 통나무들이 둥둥 떠있다. 그런데 집 구조상 위에서 조금만 힘을 주어 걸어도 걷는 방향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도 그렇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려면 1, 2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보이는 아이가 하나 있다. 업무가 없어 낮에 집에 잠깐 쉬는 동안, 주말 낮 시간 동안에는 다다다닥, 다다다닥이다. 국적은 모르겠으나 호스트 이름과 언어는 중국계다.
이틀째 낮부터 들린 그 소리에 아 3주를 어쩌지 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층간 소음이 없다. 꼬마의 다다다닥은 평일과 일요일에는 보통 6-7시 전후, 토요일에는 8시 전후면 사라진다. 다다다닥 소리 이외의 어떤 삐걱거림도 들리지 않는다. 슬리퍼를 신고, 러그를 널찍하게 깔아 놓는 게 일반적이라지만. 철저한 훈육의 결과이지 싶다. 그러면서 어른들의 어떤 목소리도 보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아예 우리가 드나드는 출입구 앞으로 주인집 식구들이 거의 지나치지 않는다. 시어머니 또는 장모님 정도로 보이는 영어에 능숙한 할머니가 두 번 굿모닝 하면서 인사를 했을 뿐이다. 그것도 우리가 내어 놓은 플라스틱을 분리 수거 해주기 위해서.
사진처럼 월요일 아침이면 집집마다 분리수거 통을 도로밖으로 꺼내 놓는다. 그러면서 음식물 쓰레기통도 함께.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는 전용 봉투에 나누어 담는 게 일반적이다. 나의 기억처럼 통 안에 직접 음식물 쓰레기를 붓는 게 아니라. 그런데 전용 봉투가 종이 재질이다. 역시 나무가 지천인 나라답다. 자세히 보니 종이봉투 안쪽이 코팅이 되어 있는 조금 도톰한 재질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식물 쓰레기 비닐 봉투가 터져서 물기가 흘러 난감했던 기억에 꽤나 있다. 그런데 써보니 종이가 천천히 물기를 흡수하면서 젖는다. 하지만 찢어지지는 않는다. 그게 기술인가 보다.
어느 사회건 공동체와 개인은 공존 해야 한다. 그 사회의 법률과 문화를 대전제로 윈윈하는 방식으로. 그 방식이 펼쳐지는 장, 개개인의 일상이 이웃으로 영위되는 공간을 동네라고 부른다. 대부분은 그런 '동네'에 자신의 삶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평생을 들여다 보면 한 동네에서 서너 동네 사이에 다 채워져 있다. 장인 어른은 한 동네에서 50년 가까이 살고 계신다. 그 시간들을 돌아 보면 그 동네들은 먹고 일하고 쉬는 과정이 같은 듯 다른 것들이 들어차 있다. 그것과 연결된 개인의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그 에피소드가 서로 이어지는 것 그게 여행이다. 사람 사는 거 별 거 없네를 증명하는 것도 이 동네는 저 동네와 이렇게 다르네 하는 점을 찾아 보는 것도 여행이다. 결국 여행은 나의 동네를 벗어나 타인의 동네를 체험하는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