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3 in Vancouver
3년 전부터 데이 케이 센터(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처형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그 재레미를 오늘 드디어 만났습니다. 지금은 처형이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오랜 친구처럼 방문을 허락을 해준 덕분입니다. 어제 늦게까지 오늘 재레미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가져다 드릴 한국 음식을 함께 만든 아드님, 따님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불고기와 떡꼬치, 깍두기 볶음을 건네받지도 않고 와락 처형을 안고 오랜 친구가 다시 찾아온 표정을 짓는 69세 재레미는 100년이 넘는 건물을 빌려 27년째 유치원을 운영 중인 영국계 캐네디언 할아버지였습니다.
처음 보지만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책 속의 주인공 같았습니다. 아드님이 나중에 돌아오면서 그럽니다. 박물관에 들어가 옛날이야기를 듣고 온 기분이라고. 옛날이야기책을 한 권 읽은 느낌이라고. 일반 교실 두 개 정도가 연결된 크기의 네모 반듯한 실내.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벽을 빙 둘러 나지막한 책장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습니다. 출입문에 바로 붙어서 자그마한 주방이 있고 주방 맞은편에 계단 서너 개를 올라서 무대같이 뒤로 푹 밀려난 공간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곳입니다. 그 계단 왼쪽으로 들어서면 화장실아 나란히 두 개, 두 번째 화장실 맞은편 문을 열고 나가면 뒷마당입니다. 뒷마당으로 나가기 전 오른쪽 깊숙한 공간을 재레미가 불을 켜주면서 자랑합니다. 다양한 공구들이 모여 있는 흡사 자그마한 목공소 같아 보입니다.
웬만한 건 재레미가 직접 만들고 고치는 곳이랍니다. 뒷마당으로 나가니 아까 봤던 세 살-다섯 살 아이들이 뒤섞어 뛰어다니고, 앉아서 놀고 있습니다. 블록을 만들고, 서서 인형 놀이를 하고, 미끄럼틀을 탑니다. 모여 있는 듯 각자에 집중합니다. 처음 들어섰을 때 호기심에 티셔츠 끄트머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헬로 했던 파란 눈의 네 살 00은 어느새 알아서 헬멧까지 쓰고 제법 빠른 속도로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고 뱅글뱅글 달립니다. 그러다 한국인 선생님 모건이 외칩니다. 점심 먹으러 들어가자고. 런치란 말을 두어 번 정도 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장면이 5분여 동안 펼쳐집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둘이 서서 인형집 놀이를 하던 아이 둘, 열여덟 따님 양쪽 옆에 착 달라붙듯 앉아 계속 블록을 만들어 주며 말을 걸던 아이 둘, 자전거를 타던 00이, 미끄럼틀에서 방금 내려와 엉덩방아를 찧은 아이. 모두가 자기 하던 것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세 살, 네 살, 다섯 살들이.
그렇게 애지중지 만들던 블록을 다 분해해 커다란 바구니에 다시 담습니다. 나무젓가락 같은 자그마한 손가락에 힘을 주어 분리해내려 합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선생님이 쳐다만 볼 뿐 도와주지 않습니다. 전혀. 서서 인형집 놀이를 하던 두 아이들은 침대 모형에 뉘었던 인형, 자그마한 공간 안에 넣어 두었던 피카추 인형, 식탁 주변에 주르륵 세워 두었던 의자들을 옆 자그마한 바구니에 담습니다. 옆에 있는 인형집이 허물어지는 게 아쉬워 엉덩이를 주욱 빼는 듯합니다. 그러자 같이 놀던 옆 아이가 반팔 소매를 살짝 끌어당기면서 실내로 향합니다. 00 이는 헬멧을 휙 하고 벗고는 재레미가 앉아 있는 뒤 테이플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헬멧들 사이에 가져다 놓습니다. 들고 가면서 나를 한번 보고 파란 눈을 찡긋합니다. 새하얗게 들어가는 보조개가 선홍빛으로 짙어집니다.
실내로 들어온 아이들은 줄을 서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손을 닦기 위한 준비 동작(?)이랍니다. 좁은 통로에 줄을 서면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걸 방해할 수 있다고 가르친 덕분이랍니다. 00 이는 그 사이에 재레미 옆에 가서 다리를 앉고 서 있습니다. 인형집 놀이를 하던 아이 둘은 실내에 들어와서도 단짝인가 봅니다. 나란히 손을 잡고 커다란 사자 인형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밥 먹기 전 손을 씻는 공간은 아이들 화장실 변기가 나란히 보이는 안쪽에 있습니다. 은색 세면대에 성큼 제일 먼저 올라 선 아이는 따님옆에 앉아 있던 &&&&입니다. 먼저 수도꼭지를 위로 살짝 저칩니다. 발판에 올라서도 작은 키에 한 번에 되지 않는가 봅니다. 순간 기저귀로 빵빵해진 엉덩이 아래 종아리에 힘껏 힘을 주면서 깨금발을 하자 두 번만에 물이 쫘악하고 나옵니다. 얼른 손을 맨 물에다 비빕니다. 서너 번 그러더니 수도꼭지를 다시 힘껏 내립니다. 이번에는 한 번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왼쪽에 있는 액체 비누를 꾸욱 누릅니다. 그렇게 자그마한 펌프통은 오늘 처음 봤습니다. 아마 하루에 두 번 정도는 채워야 하지 싶었습니다. 물을 잠근 채 다시 손바닥을 서너 번 비빕니다. 거품이 묻은 손으로 다시 종아리 힘. 물을 틀어서 비누를 씻어냅니다. 그렇게 하는 &&&&이 함박 얼굴이 맞은편 유리에서 더 크게 웃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미소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눈빛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더 놀랍습니다. 액체 비누가 담긴 선반 바로 아래에 네모 반듯하게 딱지만 한 손수건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를 꺼내 손을 닦습니다. 제대로 펼치지도 않고, 뭉툭뭉툭 닦아내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해 본모습입니다. 그리고는 그 손수건으로 수도꼭지에 묻는 거품, 은색 세면대 주변의 물기를 왔다 갔다 닦아냅니다. 왼쪽, 앞쪽 거울에 튄 물기를 닦아냅니다.
그리고는 폴짝 20cm 남짓한 발받침대 아래로 폴짝 뛰어내립니다. 그리고는 나를 한번 더 쳐다보곤 소리 없이 미소를 지으면서 입구 쪽 책장 앞으로 달려갑니다. 그전에 손수건을 바로 앞 바구니에 쏘옥 하고 던져둡니다. 책장 낮은 곳에서 기저귀 찬 엉덩이 마냥 빵빵한 자그마한 가방을 하나 기우뚱하게 들고 재레미 책상 앞 첫 번째 구역으로 천천히 걸어옵니다. 가방은 거의 바닥에 닿아 끌려 옵니다. 하지만 &&&&는 끌지 않고 들고 오는 것처럼 어깨와 팔에 잔뜩 힘을 줍니다. 그리고는 자그마한 의자옆에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는 첫 번째 구역과 두 번째 구역을 나누는 나지막한 책장 안에서 겨자색 테이블보를 하나 꺼냅니다. 천천히 돌아서서 자기 가방을 세워둔 의자 앞 식탁 위에 보를 깔아 둡니다. 한 손으로 펼쳐지지 않자 가방 지퍼를 잡고 있던 손을 올려 두 손으로 천천히 쫘악 펼칩니다. 그리고는 가방 지퍼를 얇디얇은 손가락으로 힘겹게 엽니다. 지퍼를 잡지 않은 손은 지퍼 아래 가방 고리를 잡고 힘을 더 주는 게 너무 기쁠 정도였습니다.
그러는 모습을 옆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선생님이 커다란 유리 접시를 &&&&이가 펼친 식탁보위에 올려줍니다. 유리 접시는 작지 않습니다. 파스타 접시만 했습니다. 그리고 두께도 도톰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꽤나 묵직하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가 투명 용기 뚜껑을 힘껏 열려고 애씁니다. 세 번이나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모른 척합니다. 그러면서 말로 그럽니다. 자, 다시 한번 해봐. 양손가락을 다 사용해 봐. 그렇게. 그렇게. 그러고 나서 힘겹게 연 투명 용기에서 조각 피자 같은 빵을 꺼내어 선생님이 올려 준 유리 접시 위에 올립니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그 유리 접시를 들고 한국인 선생님 앞으로 갑니다. 한국인 선생님은 전자레인지 앞에 서 있습니다. 바닥을 자세히 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분홍색 커다란 점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그 점 두 번째 위에 가서 조용히 기다립니다. 앞에서 먼저 전자레인지를 돌리는 아이를 기다리는 겁니다.
&&&& 차례가 되었는데도 선생님은 &&&&를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접시 위에 올라앉은 빵이 미끄러질 것처럼 움직이면서도 용하게 잘 들고 이럽니다. 선생님, 제 밀을 좀 따듯하게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플리즈. 플리즈라는 소리가 들리자 선생님은 함박 미소로 오케이라고 대답하면서 무릎을 굽혀 접시를 받아 전자레인지 안에 넣고 돌립니다. 그러는 사이 &&&&는 두 번째 분홍색 점 위에 마치 묶어 있는 것처럼 좀처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주 잠깐 돌린 후 선생님은 꺼냅니다. 그러자 두 손을 앞으로 나란히 하듯이 뻗어서 기다립니다. 그리고는 정말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자기 가방이 있는 자그마한 식탁 옆 의자 위에 뒤뚱거리면서 걸어가 앉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꺼낸 포크로 조각 하나를 찍어 입에 넣습니다. 오물거리는 입가에 금방 침이 고입니다. 손가락으로 쓰윽 닦아 넣고 다시 오물거립니다.
2시간 가까이 머물다 돌아 나오는 데 아가들 모두가 자그마한 손바닥을 펼쳐서 우리 가족을 향해 흔들고 있었습니다. 아드님도, 따님도, 나도 반갑게 흔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재레미는 처형을 꼬옥 안아주면서 그럽니다. 꼭, 조만간 다시 오라고. 다시 오라고. 언제나 환영한다고.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난장스런 눈빛으로 그럽니다. 멋진 한국인 선생님이라고. 잘 가라고. 잘 돌아가서 행복한 하루하루만으로 가득 채워지라고. 100년이 넘은 건물 문을 밀고 나오니까 금세 거대한 도시 속으로 우리 모두 툭 뛰쳐나온 듯합니다. 오래된 이야기책 속에 있던 커다란 오두막 안에서 함께 사는 법을 너무나도 잘 배우는 세 살, 네 살, 다섯 살 오물이 들이 금방 다시 보고 싶어 집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아이들과 돌아준 따님도, 나의 인생 멘토인 처형도 나처럼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습니다. 2시간 가까이 통역을 하느라 과묵함을 잊을 수밖에 없었던 아드님도. 13명의 오물 천사들. 52번째 생일날, 잊지 못할 커다란 선물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