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 부드럽게

[세상의 모든 물견]2_에어패드

by 정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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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만에 집에 돌아와서 두 번째로 한 일이 차를 살펴보는 거였다. 다다음날 월요일, 출근하기 전에. 내 차는 8년, 18만 킬로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이 차에는 출고 후에 개인적으로 단 원격시동기가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내 차의 상태를 알 수 있다. 그걸 차 안에 심어 두어서 나는 자동차 키가 없다. 폰으로 열고 닫고 켠다.


8년 전. 차를 출고받고 몇 달 뒤. 남매 어릴 적 지인들과 태국 여행을 갔을 때다. 차는 인천 공항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해 둔 채. 겨울이었다. 방콕 공장에 내려서 일주일짜리 유심을 사서 끼웠다. 같이 간 네 식구 어린들이 거의 동시에.


그런데 여행 일정 한 사흘 지났었나. 내 휴대폰 메모리만 쭉쭉 줄어들었다. 길 찾기 정도만 하고 있는데도. 그때 귀국해서 방전된 차를 보고 처음 알았다. 아, 24시간 대기하면서 내 휴대폰과 연동하느라 계속 이 차 배터리를 사용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이후 연동을 삭제하고 멈추게 하는 법을 알고 잘 사용해 왔다

.

지하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시동이 걸리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폰이 안되면 앞유리에 부착된 번호판에서 비번을 누르면 된다. 그런데 어떤 반응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일요일 아침 긴급 출동을 신청했다.


이십여분 만에 달려온 기사분.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분명 이십 대 같아 보였다. 보조개 깊게 패이는 해맑은 미소. 새하얀 얼굴 때문에 촬영을 위해 일부러 작업복을 입은 듯 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차문을 여는 예전 방법을 더듬거렸다.


잠긴 차문을 강제로 어떻게 열까. 그렇지. 얇고 긴 쇠칼(?) - 사극에서 가끔 나왔던 춤추던 백정의 그 칼의 미니 버전 정도 -을 운전석 문 유리와 틈 사이로 쑤욱 집어넣어 이렇게 요렇게 손목으로. 그렇게 조금은 과격한 물리적 방식을 상상했다.


하지만 출동한 그 기사분이 자기 차에서 꺼낸 건 A4 용지 반만 한 까만 고무 지갑같이 생긴 것. 그 끝에는 예전 병원에서 혈압 체크할 때 쓰던 것 같은 길쭉하게 둥그런 고무 튜브가 달려 있었다. 손으로 꾹꾹 쥐어짜듯 누르면 에어가 쉭쉭하고 들어가 던.


얇은 고무 지갑 같은 것을 앞문과 뒷문 사이 좁은 틈에 살짝 끼웠다.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양손으로 꼬깃꼬깃 접었다 폈다 반복했다. 고무 지갑 끝부분이 애처롭게 그 틈에 끼어 있듯 축 늘어졌다. 그러자 역시 새하얀 자그마한 손으로 둥그런 부분을 잡고 꾹꾹 눌렀다.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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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천천히 천천히 에어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게이지를 보는 것처럼. 그러자 토라져 있듯 나를 외면했던 차가 조금씩 열렸다. 아주 조금씩. 그 벌어진 틈으로 끝 부분이 기억자로 꺾인 굵은 긴 철사를 넣었다. 그리고는 살짝 당겼다. 문 안쪽 손잡이를. 그렇게 문은 열렸다.


10점 만점에 10점을 부탁, 해도 되냐며 물을 때는 볼이 살짝 붉어지는 것 같았다. 처음 영업을 나갔을 때 내 얼굴도 그랬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했다. 10점 만점에 100점을 체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결국은 시동을 켠 채 두 시간 가까이 강제 드라이브를 했다. 하지만 결국 두 시간의 주행에도 2년 조금 넘은 배터리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그날 그 기사분을 한번 더 만나야 했다.


그날 몇 시간 동안. 세상을 부드럽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로 해야 하는 게 넘쳐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도 그 얇은 고무지갑처럼, 그 고무지갑에 달린 튜브처럼. 그런 모습으로 그런 역할로 살아내는 방법을. 눈에 보이지 않는 에어가 단단하게 닫힌 문을 살짝 열어 놓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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