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여행자 ] 20
아침 출근 준비 중. 아내가 따님이 먹고 싶다는 계란 볶음밥을 하고 있다. 냄새가 벌써, 아내다. 옆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그런다. 자기야, 냉장고 안에서 참깨통 좀 꺼내 줘. 어. 알았어. 20분 정도 남았다. 계란 볶음밥을 먹고, 싸고, 나가야 할 시간이.
어떤 거, 왼쪽? 오른쪽 거? 어?, 새 거. 참깨가 가득 들어 있는 통을 꺼냈다. 그리고 아내 옆으로 몇 걸음 걸어가면서 뚜껑을 열었다. 어, 통 주둥이에 살짝 폭신한 보호 필름이 씌워져 있었다. 마침 그저께 짧아진 엄지손톱으로 플라스틱과 필름 그 경계를 들춰내려고 했다. 너무 얇다, 안된다. 계란 볶음밥은 다 되어 간다.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바꿔 본다. 왼쪽 엄지를 믿지 못하듯. 왼손으로 참깨통 머리 부분을 부여잡고. 오른쪽 엄지 손가락으로 다시 시.... 빨리 줘, 다 해가는데. 어. 이 필름이. 돌려, 돌려봐. 뭘 돌려. 통을 돌려. 왜 돌려. 아휴. 아, 수백 번 손톱을 가져다 된 반대쪽에 아기도마뱀 새끼발톱만 한 게 톡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한 번에.
든든하게 먹고, 도시락까지 싸서 달리는 차 안. 얼마 전에 마음 고생한 따님이 며칠간을 쉬었다. 어른들(?)이 보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데, 그 며칠간 참 재미나다며 몰아본 드라마가 하나 있었다. 뭐라, 엉덩이를 만지면 그 사람이 본 게 다 보이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 이야기.
그 스토리에서 내가 제일 관심을 갖은 부분. 그딴 초능력보다 어쩌면 더 뛰어난 능력일지도 모르는 것. 바로 행간의 뜻을 읽어내 전달해 주는 토박이 형사의 멘트였다.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온 강력계 형사 옆에 딱 붙어서 가 못 알아듣는 사투리 속 숨은 의미를 재해석(!) 해주는 토박이 형사.
살다 보면 이런 역할 정말 필요할 때가 있다. 생각보다 아주 많다. 내 뜻은 그게 아닌데 할 때, 말 문이 막혔을 때, 참깨통 벗길 때, 실마리를 찾아 헤매일 때, 엎질러진 물 잘 닦아 주고, 닦은 걸 잘 말려 줄 수 있는 그런 역할. 있을꺼야,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꺼야. 그때까지 내 마음은 괄호 안에 넣어 두기로.
왜 이렇게 늦었어?(걱정했어), 연락 왔어?(걱정하지 마. 뭐 먹을까?), 나 갔다 올께(조심해서 다녀와. 일할 때 너무 힘주지 말고, 살살하자), 그냥요(전화 자주 드릴게요. 몸은 괜찮으시죠?), 잘 다녀와(잘 배우고, 기죽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목도리 챙기고, 약 챙기고, 어깨 펴고, 계단으로 많이 걷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