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따듯한 T가 될 수 있을까] 4
하천 옆 휘어진 도로 위로는 몇 분 만에 한 번씩 빠른 속도로 차가 우리를 지나쳐갈 뿐이었다. 그렇게 몇 대의 차가 지나갔다. 저 멀리서 빼꼼히 차가 보일 때마다 나는 여자친구를 도로 안쪽으로 들어가게 손을 끌었다. 그때도 그랬다. 그런데 짙은 색의 그 승용차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우리 옆을 지나갔다. 느낌에 초보는 아닌데, 일부러 늦게 가는구나 싶게.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그 승용차도 우리를 지나쳐 갔다.
그런데 몇 미터 우리 앞으로 지나치던 그 승용차 브레이크 등이 붉게 물들었다. 도로 위에 달라붙어 있는 단풍과 길게 길게 리본 돌리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붉게 이어졌다. 그리고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본능적으로 나는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멈췄다. 아마 멈춰 움직이지 않는 우리를 봤는가 보다. 앞자리 오른쪽 창문이 열리더니 보라색 팔이 쑤욱 나왔다. 그리고는 아주 느릿하게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앞으로 오라고. 오라고.
운전석에 앉은 남편도, 손짓을 한 아내도 모두 백발이었다. 칠십 대는 족히 넘었지 싶은 느낌이 들었다. 도로를 걷는 우리 둘의 뒷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이뻐서 방향이 같으면 같이 갈까, 하셨단다. 당신들이 우리만 할 때가 생각났다면서. 그렇게 우리는 노부부의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남양주 시내까지 한 시간을 넘게 함께 했다. 늦가을 저녁은 한없이 짙었다. 노란색, 붉은색 사이에 할로겐 등이 수없이 지나쳐갔다. 하지만 그 불빛은 그저 우리 둘의 눈을 어지럽힐 수 없었다.
자동차에서는 속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액셀을 밟았다 떼었다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부드럽게, 천천히 자동차는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듯 움직였다. 마치 두 배우가 트럭 위에 올라탄 타에 앉아 운전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연기를 하는 듯했다. 운전 중에도 두 손을 꼭 잡았다 떼었다 하면서. 그런데 손을 잡고, 떼는 게 다급하지도 경박하지도 않았다. 쓰다듬지도 그리고 노부부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일체 묻지 않았다. 그냥 이뻤다고, 요즘 젊은이들이 누가 그렇게 걷냐고, 그냥 보기 좋았다는 삼십여 분전 출발할 때의 그 말이 전부였다.
노부부는 얼굴을 마주 보지는 않았다. 두 분 다 앞을 바라보면서 등에 주름 가득한 두 손만 자주 만났다 헤어졌다 했다. 아내분이 의자에 딱 붙어 있는 것 같은 남편분을 가끔 돌아봤을 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천천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긴장한 탓도 있지만, 노부부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 둘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숨 쉬는 소리조차 날까 봐 자연스레 가슴이 아니라 배로 숨이 쉬어졌다. 쳐다보지 않아도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단다.
가는 길이 달라져 더 같이 못가 미안해하시던 노부부. 그렇게 서울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는 내내 한참, 우리는 말이 없었다. 꼭 손만 잡고 있었다. 딱 한마디만 했다. '우리도 저렇게 나이 들어 가자'고. 그 말에 여자친구는 다시, 그 미소로 대답을 했다. 그 미소 덕분에 우리 둘은 이십 년 넘게 그렇게 나이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때의 여자 친구는 그때 사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맛난 두부 김치에 어묵탕을 일품으로 만든다. 가끔 그렇게 밥대신 막걸리에 두부 김치를 먹고 싶어 한다. 뜨끈한 어묵탕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반전이 없어 글이 밍밍하다, 는 생각이 드실지도. 그런데 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의 이야기, 소설속 반전은 참 좋다. 어쩔때는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내 인생 켜켜히 끼어 있는 반전마다 녹녹치 만은 않은 고비와 출렁다리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런 밍밍한 일상이 좋다. 밍밍한 일상마다 그 노부부 더 이야기하게 된다. 아니, 그 장면을 기억해 낸다. '우리도 저렇게 나이 들어 가자'는 약속을 잃지 않기 위해서